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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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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20분 서울지법 311호 법정 복도에 시퍼렇게 각이 선 법복을 차려 입은 박용석(朴用錫) 대검 중수2과장 등 수사검사 4명이 나타나면서 공판 시작을 알렸다.
먼저 도착해 의자에 앉아 있던 김기섭(金己燮·구속) 피고인측 홍준표(洪準杓) 변호사가 검찰 선배로서 먼저 악수를 청했지만 검사들은 굳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수사팀이 법정에 들어가 검사석에 나란히 자리를 잡자 이윽고 반대편 변호인석에도 ‘베테랑’ 변호사 5명이 진을 쳤다. 한나라당 강삼재(姜三載) 의원측 변호인인 안상수(安商洙) 의원과 김전차장측 홍변호사 등도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개정을 기다렸다.
“지금부터 서울지법 형사합의 21부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장인 장해창(張海昌) 부장판사가 근엄한 목소리로 개정을 선언했고 이어 구속피고인인 김전차장은 피고인 대기실을 통해 입정했다. 강의원은 3분 정도 늦게 동료의원 5, 6명과 함께 입정해 한 자리를 띄운 채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긴장된 분위기는 변호인측의 공판 연기 신청을 검찰이 받아들이면서 다소 진정됐지만 안의원이 검찰측에 공소장 석명(釋明·설명하여 밝힘)을 요구하자 분위기는 다시 반전.
“강의원과 김전차장이 함께 예산을 횡령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인데 도대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모의를 했다는 것인지가 공소장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석명하세요.”
강의원이 ‘공범’이라면 두 사람이 접촉해 범죄를 계획했다는 증거를 대라는 주장이고 아직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검찰은 ‘허’를 찔린 셈이다.
이어 홍변호사는 “대형 사건에서는 서류로 내는 증거보다 말로 하는 구두변론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나오기 때문에 재판부가 ‘전동타자’로 전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 달라”고 주문했고 안변호사도 “녹음도 잘 되도록 해 달라”고 재판부에 이색 요청을 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이주영(李柱榮) 의원은 “피고인들에 대한 변론서류를 미리 낼 테니 검찰도 신문사항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지만 검찰은 “전례가 없다”며 한마디로 거절.
10시40분경 공판이 끝나자 강의원과 변호인단은 검찰측과 악수를 나눴지만 서로의 눈빛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공판이 끝난 뒤 홍변호사는 특별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 돈이 안기부 돈이 아니면 어쩌지요?”라며 “재판을 잘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
한편 검찰은 이날 극도로 말을 아끼며 칼날같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3월6일 열리는 2차 공판에서는 김전차장이 지원한 안기부 예산 1197억원의 성격과 두 피고인의 공모 여부, ‘윗선’개입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된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