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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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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경, 연신내 전철역을 출발해 연서로로 들어선 시라타니씨. 사거리마다 성산대교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한동안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신사오거리에서 성산대교 방향 표지판을 확인하고 직진한 그가 다음 교차로인 신응교 사거리에서 갑자기 “어”하는 비명과 함께 차를 세웠다.
“표지판이 없네. 어디로 가야 하죠?”
분명 좌회전 우회전 직진이 모두 가능한 사거리인데 표지판이 없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직진을 한 그는 다음 교차로에도 여전히 표지판이 보이지 않자 결국 차를 세웠다.
행인 몇 명을 붙잡고 길을 물어본 그는 “우리가 제대로 ‘찍었어요’. 계속 직진하면 성산대교래요”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왜 저렇게 교차로에 표지판을 안 세워놓죠? 저러면 운전자가 일관성 있는 운전을 못하잖아요”라고 의아한 표정이다.
마포구 증산 빗물펌프장 앞에서는 사고가 날 뻔했다. 아무런 사전 표지판이 없었는데도 갑자기 지하차도와 우회전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눈앞에 나타난 것.
시라타니씨가 “으악”소리를 내며 황급히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 간신히 사고를 면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이후 U턴을 해 겨우 성산대교를 탔다.
서부간선도로 진입 이후 신정교 위, 안양천길 진입로에서도 사고가 날 뻔했다. 분명히 갈림길인데도 표지판이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야 ‘출현’한 것. 표지판을 보기 위해 다리 위에서 시속 10㎞로 서행한 시라타니씨.
주변 차들의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를 참으며 표지판을 확인한 뒤 그는 “길이 다 갈라진 다음에 표지판이 있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다른 구간에서 두 차례 더 가진 실험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계속됐다. 표지판이 가로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실험을 마친 뒤 시라타니씨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표지판이라는 게 오히려 운전자를 헷갈리게 할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네요. 교차로마다 객관식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들었어요. 항상 ‘어디로 가야하나’를 찍어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운전하려면 천부적인 방향감각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시라타니 프로필 ▼
76년 일본 오사카(大阪)출생. 98년 도쿄(東京) 소카대(創價大) 법학과 졸업. 올해 3월 연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 현재 석사과정 이수중.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대해 꼭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어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는 소신파. 학.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