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펀드' 여야표정]겉으론 당당 내심 긴장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으로 구속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鄭炫埈)사장의 사설 펀드 가입자 명단 공개 여부를 놓고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여야 모두 명단을 공개해서라도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 “필요하면 검찰이 알아서 공개할 것”(여당)이라거나, “정현준펀드는 여권실세의 관련여부를 가려줄 핵심사안이므로 공개해야 한다”(야당)는 것.

한나라당은 31일에도 “여권 실세가 정현준펀드에 가입했다는 의혹을 밝혀야 한다”(권철현·權哲賢대변인)고 공격을 했다. 민주당도 “우리는 떳떳한 만큼, 어떤 경우든지 당당하게 밝힐 것”(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부, 특히 여권 쪽에는 ‘명단 공개’를 껄끄러워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현준씨와 이경자(李京子)동방금고부회장이 불법대출을 저지르고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이 문제”라며 “사설펀드는 부수적인 사안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원금보장을 약속받았다면 모르되, 사설펀드에 가입한 것이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소장파 인사들 중에는 “명단 공개는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펀드에 남아있는 사람은 엄청나게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는 항변도 나온다.

이는 지난해부터 30대 안팎의 소장파인사들이 정현준씨와 자주 접촉했고, 그 과정에서 사설펀드 가입을 권유받기도 했다는 정치권 주변의 얘기와 무관치 않은 분위기로 보인다.

한 정치권 주변인사는 “‘정권실세 연루설’과는 별개로, 정치권에는 소장파 원외위원장이나 의원보좌관들 가운데 ‘정현준펀드’에 소액을 ‘투자’한 사람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정현준씨가 부산출신이어서, 야당쪽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야당에도 명단공개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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