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영씨 단독인터뷰]"박지원씨와 공개 대질신문을"

  • 입력 2000년 9월 20일 18시 56분


검찰 출두를 앞두고 19일 밤 본보와 9시간의 단독 인터뷰를 가진 이운영씨는 ‘박지원전장관 개입설’ 등 기존의 핵심 주장을 재차 확인하며 자신에 대한 사직동팀의 ‘쥐어짜기식’ 수사 등 이전 기자회견을 통해 미처 밝히지 못했던 대목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씨는 또 “지난달 29일 동아일보 등을 통해 이 사건이 보도되지 않았더라면 박혜룡씨, 박전장관 등과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는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말해 ‘정치적 해결’을 모색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이제 검찰에서 진행될 수사 과정에서는 박전장관과의 ‘공정하고 공개적인 대질’을 요청하는 등 이씨는 보다 공세적으로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이씨의 주장을 사안별로 정리한다.

▽“박전장관이 두 차례 전화한 것은 사실”〓박지원 당시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은 만난 적이 없지만 TV를 통해 익히 들어 친숙한 목소리였다. 더구나 대화 시간이 2∼3분으로 짧아 더욱 생생히 기억난다. 물론 ‘박씨의 목소리’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은 없다. 그 당시는 일이 이렇게 번질 줄 몰랐다. ‘어떻게든 녹음해 둘 걸…’하는 생각도 든다.

▽“사직동팀은 강압수사 했다”〓지난해 4월22일 사직동팀 수사 요원이 조사중에 ‘당신에게 뇌물 준 업체 사장의 진술서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정작 내용은 안 보여주고 끄트머리에 ‘…한 사실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만 보여줬다. 나는 (뇌물) 받은 것이 없다고 했더니 수사요원이 다른 진술서를 추가로 보여주겠다고 하다가 정작 보여주지는 못하더라.

조사 장소를 R호텔로 옮긴 뒤 한 수사 요원이 “흉악범도 내 앞에서는 두 시간이면 끝나는데 당신 참 지독하다”며 채근했다. 사직동팀원 중 이모팀장은 “왜 그렇게 재산이 많아”라며 내 오른쪽 허벅지를 걷어차기도 했다.

▽“골프채 수뢰는 함정”〓당시 사직동팀은 ‘나에 대한 제보가 들어와 수사한다’고 얘기했다. 골프채 받은 제보가 있다고 팩스용지 같은 것을 보여주는데 골프채 받은 날짜가 3월31일이라고 돼 있었다. 그게 사직동팀이 내게 유일하게 보여준 문서다. 거래업체이던 Y사에서 개발한 시제품이었는데 1, 3, 5번채였다. 이를 300만원 정도로 계산한 모양인데 시제품이라 합해야 30만원 정도였다. 게다가 4월중에 딱 한 번 쳐본 뒤 아내를 통해 그 회사의 김모라는 간부에게 4월27일 돌려줬다.

▽“사직동팀도 청탁 많이 했다”〓당시 신용보증기금 손용문이사에 따르면 나를 걷어찼던 이팀장은 기금 본부에 보증을 부탁하는 등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손이사로부터 “최광식 당시 사직동팀장이 나에 대한 보고서 때문에 상당히 고심 중”이라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사직동팀이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에게 내 수사보고서를 올렸더니 “왜 이것뿐이냐. 내가 들은 얘기가 있는데…”라며 보고서를 집어던졌다고 손이사가 전해줬다.

▽“권노갑씨에게 기대했던 것은 사실”〓지난해 7월27일 동국대 총동창회 사무실에서 나와 아내, 윤천영 부회장 등이 지찬경 동창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지씨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동문 피해 사항 호소문’을 작성해 권노갑최고위원에게 전했고 권최고위원은 그 호소문을 박지원씨에게, 박씨는 다시 박혜룡씨와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 뒤 올해초 지씨와 윤씨 등이 박혜룡씨를 만나 박전장관과의 면담 주선을 요청하기 전까지 반년간 별다른 ‘구명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권최고위원에게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도 뭔가 장애물이 있어 힘을 쓰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항’의 진실〓내가 5월 박전장관에게 쓴 편지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라는 대목은 박전장관이 내게 전화했다는 사실을 ‘흐린’ 것이 아니라 박혜룡, 현룡씨 형제가 박전장관의 친조카가 아닌데도 자신들을 친조카라고 소개해 내가 그렇게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뜻한다. 편지에 내가 서명하기 전에 박혜룡씨가 내용을 봤고 ‘오케이’한 것은 사실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8월29일 동아일보 등을 통해 내 문제가 보도된 뒤 지찬경씨가 8월30, 31일 박전장관을 만났지만 특별한 ‘진척’이 없었다. 기자회견을 결정한 것은 8월30일이고 지씨가 31일 박전장관을 만난 뒤 “물 건너갔다”고 하기에 준비했던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박전장관 등 사건 당사자들이 결자해지 자세로 ‘원만한 해결’에 노력했으면 좋았을 텐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배후의 정치 세력?’〓 현재 내 변호인인 손범규변호사가 한나라당 인권위원이어서 그쪽으로 자료가 넘어간 것 같다. 그는 내 대학선배 친구의 친척일 뿐이다. 우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결코 정치권에 휩쓸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도피 생활〓지난해 7월14일 수배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로 지방의 절에 다니며 책도 읽고 체조 등으로 체력을 유지했다. 지난해 4월 사직동팀 조사를 받기 시작한 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수배 이후에는 간단히 메모만 하고 있다. 사건이 끝나면 이를 근거로 수기를 낼 예정이다.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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