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정착될까]폐업투쟁 오래 못갈듯

  • 입력 2000년 8월 1일 23시 41분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이 1일 전면 시행됐다. 그러나 약국의 약 준비가 여전히 미흡한데다 의료계 일부가 의약분업에 반대해 6월에 이어 또다시 폐업에 돌입, 첫날부터 의약분업의 앞날이 험난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의약분업은 언제쯤 제대로 정착될 것인가. 의료계의 반발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번 폐업은 6월과 같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인천 울산 경기 등의 동네의원 절반 가까이가 폐업에 참가했고 여타 지역의 동네의원 일부도 휴가 등의 명목으로 문을 닫았다. 또 문을 연 동네의원들도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원외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은 곳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폐업이 장기화되고 대한의사협회와 시도의사회 회장단이 내세운 ‘15일 조건부 폐업’이 현실화될 경우 의약분업은 더욱 꼬일 가능성도 있다.

의권쟁취투쟁위원회 관계자는 “‘개악된’ 약사법에 따른 의약분업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지배적인 정서”라며 “점차 폐업에 동참하는 의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전공의 대다수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태 해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이번 폐업 투쟁이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보다 더 현실적이다. 의협과 의쟁투가 투쟁 수위를 놓고 갈등하고 있는데다 의협 지도부가 사퇴하고 신상진(申相珍)의쟁투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위원들이 잠적하는 등 폐업 사태를 책임질 지도부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대형병원이 1일부터 100% 원외처방전을 발행하면서 분업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일부 약을 손쉽게 구하지 못하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환자들이 차분하게 원외처방에 적응하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경 대응 자세 때문에 폐업 의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폐업에 동참하지 않고 추이를 관망하는 동네의원이 많은 것도 이번 폐업 사태가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동네의원의 폐업 사태가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의약분업이 제대로 정착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이들이 폐업을 철회한다 해도 분업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분업에 참여하되 불복종운동을 통해 환자의 불편을 극대화하겠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비단 의료계만이 문제는 아니다. 많은 동네약국에서 약 준비가 제대로 안돼 환자들이 약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불편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사용 빈도가 높은 처방약 리스트를 약국에 제공하지 않고 약국들도 앞으로의 추이를 보아가며 약을 준비하겠다는 상황이라 병원과 약국 이용에 따른 불편과 혼란은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는 “집단이기주의적인 불법 행동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것”이라며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의약분업에 불참하는 의사들의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삼진아웃제’를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방침.

그러나 정부도 고민이다. 의사들이 협조하지 않는 한 의약분업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면허 취소 등 정부의 강경책은 오히려 역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래저래 의약분업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상당한 난관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의약분업 일지▼

△1998년 8월4일:의약분업추진협의회 의약분업 시행 원칙 합의

△1999년 3월31일:의약계의 시행 연기 청원에 따라 시행 시기 1년 연기

△1999년 5월10일:시민단체 제안으로 의약분업 시행방안 의약계 합의

△1999년 9월17일:의약분업실행위원회 시행 방안 확정

△1999년 11월15일:의료보험 약가 실거래가 상한제 도입

△2000년 1월12일:의약분업 세부 시행방안을 담은 약사법 개정

△2000년 6월20∼25일:의료계 집단 폐업

△2000년 7월1∼31일:의약분업 계도기간

△2000년 7월30일:의권쟁취투쟁위원회 재폐업 결의

△2000년 7월31일:개봉판매 금지 및 대체조제에 관한 약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

△2000년 8월1일:의약분업 전면 실시, 의료계 일부 폐업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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