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환경사랑이 개발정책 꺾었다

  • 입력 2000년 7월 20일 19시 11분


수천억원의 보상금보다 환경 보전이 중요하다는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정부의 개발 정책을 꺾었다.

건설교통부가 20일 경기 용인시 죽전 택지개발지구 주민들의 그린벨트 지정 요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죽전지구에 그치지 않는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주민표정〓자신들의 땅을 그린벨트로 지정해 달라며 ‘대지산 살리기’ 운동을 펼쳐온 용인 죽전 지역 주민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용인 서부지역 택지개발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김응호(金應鎬·44)위원장은 건교부가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대지산 일대 10만여평을 보전녹지로 지정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위원장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지킬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며 “죽전 지역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인 건교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경주김씨 문간공파 김형호(金亨鎬·67)종회장도 “15대조부터 내려온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환경을 보전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표정〓환경정의시민연대 최소영(崔笑暎)간사는 “택지지구 지정 철회를 포함해 용인 지역 개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구 해제만으로 용인의 생활환경과 자연환경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최간사는 또 “정부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택지개발을 한다고 하지만 많은 부분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것으로 실수요와는 거리가 있다”며 “공급 위주의 주택 정책에서 벗어나 수도권 성장 관리 등으로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없나〓주민들이 택지지구 해제를 요구한 지역은 초중고 3개교와 도시형 공장용지 등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곳이어서 이들의 이전과 지구 전체의 재설계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금년말 착공, 2004년 입주 예정이던 아파트 1만8000가구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됐으며 주택조합원들이나 건설업체 등도 공사 지연과 설계 변경 등에 따른 피해를 보게 됐다.

지역 주민 이규춘(李圭春·36)씨는 “토지 보상가격을 올리기 위해 거짓으로 그린벨트 운운한 사람들의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소규모 아파트들이 난립해 실개천에 악취가 진동하고 도로 하나 없다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하수종말처리장도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개발이 되는가 싶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이냐”고 말했다.

이 지역 주택조합원인 김형동(金亨東·37)씨도 “일부 토지가 빠져나가면 택지지구 전체가 흔들린다”며 “4800가구 2만여명이 이미 1630억원을 투입했는데 공사가 늦어지면 그 손해를 누가 보상해줄 것이냐”고 항의했다.

보다 큰 문제는 앞으로 택지개발 자체가 벽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 택지개발은 도로나 댐처럼 일단 정부 방침으로 정해지면 예외 없이 추진되었으나 이번 일로 인해 사사건건 시비가 일어날 여지를 남겨 놓게 됐다. 이미 토지를 수용당한 지역 내 다른 주민이나 다른 택지 지구 주민들과의 형평성과 특혜 시비도 문제.

또 택지개발은 소규모 아파트보다 공원 도로 등 기반시설을 잘 갖출 수 있어 난개발을 막으면서 주택을 공급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여겨져 왔는데 정부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토지공사 이승우(李承雨)죽전개발부장은 “일부 이해관계자들 때문에 공공 정책이 차질을 빚는다면 앞으로 공공정책을 어떻게 시행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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