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검사 "검찰 정치적 중립 훼손"주장 파문

  • 입력 2000년 7월 16일 18시 39분


서울지검 동부지청 은진수(殷辰洙·39)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사가 사회 고위층 인사를 구속 수사할 경우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은검사는 14일 오후 통신망에 띄운 글을 통해 ‘검사가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등을 구속할 경우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법무부 예규가 검찰청법 8조(법무부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 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에 위반된다며 이 예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검사는 “실제로 검찰이 모 국회의원에 대해 시의원으로부터 공천 대가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당시 법무부장관이 해당 지검장에게 수사 중단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일각에선 당시 법무부장관이 민주당과 자민련 간의 여권 공조를 유지하기 위해 검찰이 자민련 모의원의 비리를 캐는 수사를 막았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는 또 “검찰이 모 국회의원의 수뢰혐의를 잡고 내사에 착수해 뇌물 공여자를 구속했으나 법무부장관의 지시로 돈을 받은 국회의원을 불구속기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인사와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검찰에서 자기 사람 챙기기에 골몰했고, 현재 검찰이 전문화되지 못한 이유는 업무능력이나 전문성은 뒤로 하고 학연 지연을 우선 따지는 정실인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법무부 박영렬(朴永烈)공보관은 “법무부 예규가 검찰청법에 위반된다는 은검사의 말은 틀린다”며 “예규와 법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일반적 지시를 내리고 총장이 일선 검사에게 구체적 지시를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선 검사는 총장의 지시를 받는 것이지, 법무부장관의 지시를 직접 받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일부 검사들은 은검사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시 30회 출신인 은검사는 부산상고와 서울대를 나와 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서 당시 홍준표(洪準杓)검사(전 의원)와 함께 슬롯머신 비리 수사를 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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