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일외고 수학여행버스 참변]

  • 입력 2000년 7월 14일 23시 18분


한마디로 연옥이었다.

3박4일간의 신나는 수학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부산 부일외국어고교 1학년 학생들을 덮친 것은 화염과 시커먼 연기였다. 학생들이 탄 관광버스가 연쇄 추돌하면서 일어난 화재로 관광버스 안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구조를 요청하는 학생들의 외마디 비명과 엄마 아빠와 친구를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가 뒤섞였고 일부 학생들은 불길을 피해 창문을 깨고 필사의 탈출을 했다. 일부 학생들은 불이 붙은 친구를 차에서 끌어냈으나 치솟아 오르는 불길 앞에 역부족이었다.

특히 독일어과 학생들이 탄 6호차는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차량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삽시간에 버스 내부 전체로 불이 번져 학생 사망자 13명 모두가 이 버스에서 나올 정도로 상황은 처절했다. 이 차에 탔다 경상을 입은 함모군은 “친구들과 얘기하던 중 ‘꽝’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차량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면서 “뒤쪽 유리창을 깨 밖으로 나왔으나 앞좌석에 있던 친구들이 대피하지 못해 대부분 희생됐다”고 울먹였다.

▼사고 현장▼

○…사고 현장은 연쇄 추돌한 버스와 승용차 등 7대의 차량이 모두 전소하는 등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 도로에는 사고 차량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흥건히 고였고 관광버스 1대가 추락한 도로 옆 15m아래 논바닥 곳곳에는 학생들의 소지품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으며 추돌에 따른 폭발과 화재로 도로가 시커멓게 그을렸다.목격자 손희모씨(54·대전 동구 산암동)는 “사고 차량의 50여m 뒤를 따라 가는데 갑자기 도로 바닥에 기름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고 관광버스에서는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뛰어 내리고 있었다”며 “잠시 후 ‘펑’하는 폭발음이 3∼4분간 잇따라 난 뒤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차량 곳곳에서 치솟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

○…사고 직후 소방대원 120여명과 경찰관 등 180여명이 현장에 투입돼 불에 탄 차량과 추락한 버스에서 희생자들을 실어 내는 등 인명 구조 활동에 분주.

김천지역 병원으로 옮겨진 일부 사망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부일외고▼

○…부산 사하구 감천1동 부일외고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온 200여명의 학부모들로 온통 울음바다.

임시 상황실이 차려진 일어과 3학년1반에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명단이 칠판에 붙었으며 사망자의 이름이 새로 확인될 때마다 학부모들은 오열하며 잇따라 실신. 독일어과 김은애양의 어머니는 “며칠 전 병원에서 퇴원해서 수학여행에 보내지 않으려 했는데…”라며 울부짖다 끝내 실신.

사망자 명단에 포함된 한 남학생의 학부모는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외교관이 되겠다던 꿈도 펴 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 버리냐”며 교무실 앞 복도 바닥에 앉아 절규. 일부 학부모들은 교무실로 몰려와 교사들에게 “내 아들을 살려내라”며 거세게 항의.

○…학교측은 교사 5명을 현지에 급파했으며 이병완교감과 교사 27명으로 사고대책반을 긴급 편성하고 사고 수습에 전념하는 한편 15일 임시 휴교키로 결정.

학교측은 또 이날 오후 7시반경 학부모 80여명을 현지에 보냈으며 임시 분향소를 설치.

이 학교 2, 3학년 학생들은 후배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교실에 앉아 묵념을 하고 일부 학생은 눈시울을 붉히는 등 숙연한 분위기.

▼사고 관광버스 회사▼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대륙관광 본사는 10여명의 직원들이 자리를 지킨 채 초상집 분위기. 대표인 이재용(李載容·71·전 부산시교육위원)회장은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아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직원들은 사고 현장에서 전해 오는 소식을 시시각각 접하면서 사고 수습 방안 마련에 분주.

한 직원은 “24년간 아무런 사고 없이 건실하게 운영돼 온 대륙관광에서 이같은 날벼락이 웬일이냐”며 눈물을 글썽.

▼부산시▼

○…부산시는 이날 오후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사고 경위와 사상자 현황 파악을 위해 김명진(金明鎭)교통국장을 단장으로 직원 5명을 사고 현장으로 급파.

시는 또 사고를 당하지 않은 학생들의 수송을 위해 사고 현장에 버스 2대를 지원하고 보건위생과를 중심으로 치료 지원 대책을 마련.

<김천〓정용균지명훈석동빈최호원기자>cavatina@donga.com

▼사망자 명단▼

▽유동달 유준영 임민성 정희수 이지훈(이상 남학생)

▽김수전 김은희 이경민 이하나 전지언 정성실 황혜정 이정은(이상 여학생·남녀 모두 부일외고 독일어과 1년)

▽주천식(관광버스 운전사) 강하식 신원미상 3명(승용차 탑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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