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영어인증시험 열풍…작년 3만여명 응시

  • 입력 2000년 5월 23일 19시 29분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영어실력을 측정해주는 3, 4개 영어인증시험의 일정을 빠삭하게 파악해놓고 1∼3개월별로 시험을 치른다고 하더군요. 나름대로 아이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생인 아들을 둔 서모씨(36)는 얼마 전 국제교류진흥회가 주관한 ‘초등학생 영어능력평가시험(EEPA)’에 참가했다가 학부모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은 우연히 소문을 듣고 처음 응시케 했는데 다른 학부모들은 오래 전부터 영어시험을 꾸준히 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TOEFL TOEIC 등 영어성적 우수자에 대한 특별전형이 확대되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영어인증시험 열풍이 불고 있다. 인증서를 갖추고 있으면 대학진학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기대심리가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99년 8월 첫 실시된 EEPA에는 3200여명의 초등학생이 응시했으나 7일 치러진 2회 시험에는 40.6%나 늘어난 4500여명이 응시했다.

EEPA는 영어실력에 따라 1∼3등급으로 나눠 읽기 듣기 능력 측정에 역점을 두고 TOEIC과 유사한 45∼65문항을 35∼50분 안에 풀도록 하고 있다. 상황묘사 그림과 간단한 지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거나 원어민의 대화를 제대로 청취 이해할 수 있는지를 종합 평가한다. 평가는 항목별 성적을 백분율로 환산해 전체 응시자 중 어느 위치에 속하는지를 제시하고 영어실력에 대한 코멘트를 곁들여 성적을 통보해준다.

응시자는 대부분 초등학교 3∼6학년생들이지만 1, 2학년 학생들도 많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신세대 학부모들이 많은 서울 일산 분당 인천 등의 지역에서 응시자가 많다는 것.

어학기관인 ㈜LATTIC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증시험인 LATTIC을 실시하고 평균 60점 이상인 경우 인증서를 발급한다. 98년에는 1만4531명, 99년 2만5284명이 응시했고 올 2월에는 8876명이나 시험을 치렀다.

LATTIC의 임형미 팀장은 “초등학생들이 학원 등에서 영어를 많이 배우고 있지만 과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검증받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많이 응시시킨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능력평가원도 매년 4회씩 ‘영어 Level Test’를 실시하고 있고 윤선생영어 등 영어학습지 회사들도 자체 회원 등을 상대로 수시로 영어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다.

영국문화원은 자체 영어강좌를 175시간 이상 수강한 7∼12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캠브리지대의 영어능력 평가시험(YLE)을 실시하고 있다. 내달 시험에는 응시자를 80명으로 제한해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바람에 새벽부터 줄서기 경쟁이 벌어졌다. 영국문화원이 개설 중인 초등학생 강좌에는 지원자가 크게 몰려 수강예약을 해놓고도 인터뷰 날짜를 배정받는 데만 9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고려대 김충배(金忠培·영어학)교수는 “초등학생 단계에서는 영어에 대한 친숙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른 과목의 수학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영어성적 우수자를 경쟁적으로 특례입학시키는 대학전형을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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