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의혹]알스톰사 崔씨 사기에 놀아났나?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29분


고속전철 차량 선정 ‘로비’는 정말 있었을까?

로비의혹의 주역으로 거론되는 재미교포 최만석씨(59)의 실체와 역할에 의문이 일면서 로비가 과연 얼마큼 주효했느냐는 ‘원초적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 프랑스 알스톰사는 로비스트로서의 ‘역량’이 입증되지 않은 최씨에게 왜 1100만달러라는 거액을 쉽게 건넸는지도 의문이다.

최씨는 차량 선정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문민정부 초기 K, C, H의원 등 실세들과 일정한 교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실세들이 차량 선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 문제. 당시 고속전철 사업 관계자들은 “차량 선정은 정치권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될 사안이 결코 아니었으며 수십명의 정부 실무자와 학자 엔지니어들이 수백 수천개 항목을 꼼꼼히 따져가며 점수를 매겨 결정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선정작업에 직접 참여한 관계 학계 인사들도 한결같이 “최씨 그림자도 못 봤다”고 말하고 있다.

고속전철 사업에 관여했던 전직 고위인사는 “최씨가 고속전철과는 별 관계가 없는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뿌리며 ‘폼’을 잡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고속전철 사업의 핵심에 있던 인사들에게는 얼씬도 못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동업자’인 호기춘씨(51·여)도 마찬가지. 그는 그의 변호사 말대로 ‘평범한 가정주부’에 가까웠으며 실제로 그는 검찰수사에서도 로비를 한 흔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스톰사는 뭘 믿고 회장까지 나서서 최씨에게 로비를 부탁했을까. 일부에서는 알스톰사가 ‘착각’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고위층을 잘 안다는 최씨의 ‘허풍’을 믿고 그에게 로비를 맡겼으며 납품업체로 선정된 뒤에도 자신의 역할을 부풀리는 그의 말에 속아 사례금을 줬을 수 있다는 추론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이 호씨와 그의 남편인 알스톰사 한국지사장 C씨의 역할. 검찰 수사에 따르면 최씨는 호씨와 C씨의 소개로 93년 4월 알스톰사의 로비스트로 선임됐다.

최씨는 당시 호씨와 사례금을 65 대 35의 비율로 나눠 갖기로 약속했으며 이들은 94년 6월 알스톰사가 납품업체로 최종 선정되면서 사례금을 받게 됐다. 그리고 2개월 뒤 호씨와 C씨는 결혼을 했다.

특히 알스톰사 한국지사의 관계자에 따르면 C씨는 부인 호씨가 로비 사례금을 나눠 받기로 약속한 사실과 실제로 사례금을 받은 사실 모두를 최근까지도 모른 것으로 알려져 로비 사례금 1100만달러의 지급 배경이 더욱 미스터리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