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현장 환경답사]생태학적 피해 여의도 140배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9분


《그야말로 ‘검은 사막’이었다. 산불이 완전 진화된 지 이틀만에 돌아본 강원 영동지역 산불 현장은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적갈색으로 변한 토양과 뼈대만 남은 ‘숯덩이 나무’가 폐허를 실감케 했다. 》

본보 취재팀은 식물생태학의 국내 권위자인 강상준(康祥俊·59)교수와 함께 17, 18일 이틀 동안 강릉에서 동해 삼척을 거쳐 고성까지 산불의 피해 현장을 답사했다.

강교수는 “먹이사슬이 끊기고 씨앗의 이동이 차단됨으로써 생태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생태학적 피해면적은 불에 탄 산림면적(1만4200여㏊·서울 여의도의 47배)의 3배인 4만여㏊에 이른다”고 진단했다.

강교수는 또 “이번 산불로 백두대간 곳곳에 생물이 생존할 수 없는 공백지대가 생기는 등 한반도 허파에 구멍이 뚫렸다”며 “기본 생태계 회복에 10∼15년, 원상회복까지는 3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해양상▼

1015㏊의 산림이 불 탄 강릉시 사천면 야산. 나무 둘레가 온통 검은 숯덩이로 변해 있어 불길이 초속 20m 이상의 돌풍을 타고 나무를 휘감으며 산림을 태웠음을 짐작케 했다.

지표 위 40㎝까지 섭씨 600∼800도의 열기가 미쳐 소나무 밑동은 모두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바글대던 개미는 온데간데없고 여기저기 널린 구멍 속에서도 생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땅속 5㎝까지 170∼180도의 열기가 전달돼 땅속에 묻혀 있던 휴면상태의 식물종자는 물론 버섯포자 곰팡이 이끼류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송이 근균(根菌) 등 모든 생명의 씨앗들이 파괴됐다. 동해시 비천동 초록봉(해발 531m) 6분 능선의 경우 소나무 숲 2100㏊ 중 90% 가량이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검게 타버렸다. 불길은 송진을 머금은 소나무만 쫓아간 듯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 물기를 많이 머금은 활엽수는 멀쩡했다.

지표에 10∼20㎝의 두께로 쌓인 솔잎이 타며 방출한 고온의 열기로 토양은 흑갈색에서 적갈색으로 변했고 바위에 붙은 이끼는 불에 녹아 검은 페인트처럼 변했다.

7240㏊의 산림이 불 탄 삼척시 근덕면과 원덕읍 일대. 근덕면 궁촌리 마을 중턱에서 원덕읍 임원3리에 이르는 36㎞의 임도(林道)는 온통 검게 탄 소나무로 뒤덮여 낮에도 음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송이 주산지인 이곳은 소나무 숲이 사라져 최소 20년 이상 송이 채취가 불가능해 보였다.

삼척지역의 산불은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해발 1352m) 일대까지 번져 설악산과 고성군 민통선을 잇는 ‘생태계 터널’이 상당부분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96년에 이어 이번 산불로 700㏊의 산림이 타버린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와 구성리 일대는 그동안 이식한 어린 소나무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굵은 입자의 마사토만 황량하게 남아 ‘검은 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강교수는 “한 곳에서 수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산림이 불 타 외부로부터 식물종자가 유입돼 원상 회복이 되려면 최소 3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동물들도 먹이사슬이 회복되는 동안 찾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원 대책▼

강교수는 “인공조림을 하려면 불 탄 나무를 그대로 둔 채 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교수는 96년 고성 산불지역의 복원사업을 예로 들며 “인공조림을 위해 작업도로를 만들고 불 탄 나무를 자른 뒤 옮기는 과정에서 토양 표층을 손상시켜 점토가 빗물에 씻겨나가는 바람에 결국 나무가 활착하기 어려운 마사토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에 탄 나무를 그냥 두면 경관상 보기 나쁠지는 몰라도 서서히 썩으면서 토양에 영양분을 주고 벌레에게는 좋은 서식환경을 마련해 줌으로써 10년 정도가 지나면 불 탄 나무에서 회색 속살이 드러나는 등 생물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예상피해▼

강교수는 우선 숯덩이가 된 나무와 솔잎, 토양 입자가 빗물에 씻겨내려 바다로 흘러들 경우 물의 탁도가 높아지고 이 때문에 햇빛 투과량이 감소됨으로써 양식에 영향을 주는 백화현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산불에 따른 산성비의 영향으로 앞으로 산불이 더욱 대형화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일반 원시림의 경우 낙엽이 분해가 잘 되지만 산성비가 내리는 지역의 경우 낙엽에 기생하는 미생물 숫자와 종류가 줄어들어 낙엽이 잘 썩지 않게 됨으로써 산불 발생이 잦아지고 또 대형화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강교수는 “대형 산불을 막기 위해서는 헬기 등을 고정 배치한 ‘광역산불진화센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하고 산림 골짜기를 경계로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 불에 잘 타지 않는 활엽수 방화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릉·동해·삼척·고성〓경인수·지명훈기자>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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