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소방대원 '산불과 전쟁 첨병'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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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4시경 강원 삼척시청 산불진화 종합상황실. 시 민원봉사과 정연만(鄭然萬·45)병무계장은 밀려오는 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텁수룩한 수염에 입술은 보기 흉할 정도로 부르텄다.

정계장은 화마(火魔)가 삼척시 일대를 덮친 7일 이후 단 1시간도 맘 편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늦게까지 삼척시 근덕면 미로면 등의 산을 오르내리며 진화 작업을 했고 새벽엔 불이 번지는지를 감시해야 했다.

총선 당일인 13일에는 새벽부터 미로면 야산에서 진화 작업을 한 뒤 저녁엔 선거 개표요원으로 동원돼 14일 오전 1시까지 삼척시청 별관에서 개표 작업을 했다.

개표를 끝내고 다시 종합상황실로 돌아온 정계장은 검게 그을린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으로 예비군 배치 업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원 동해시 도시녹지과 장철오(張鐵五·47)산림계장도 3일째 불길을 쫓아다니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 식사는 대부분 비닐봉지에 담은 주먹밥과 김치로 때우고 있다.

장계장은 “남은 불씨가 꺼진 것을 확인할 때까지는 쉬려야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삼척소방서 방호담당 김남규(金南圭·46)소방위는 7일부터 단 하루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하루 300㎞가 넘는 산길을 누비고 있다.

강원 동해안 일대 산불이 장기화하면서 삼척시 동해시 공무원 1000여명, 소방대원 700여명은 이처럼 ‘산불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진화 작업에 동원된 육군 철벽사단 예하 부대 3000여명의 군인들도 마찬가지. 이곳저곳 불길을 쫓다 보면 식사도 제대로 배급받지 못해 비상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야산에서 천막을 치고 자다 오전 2, 3시경 갑자기 산불현장으로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동해시 일대에 투입된 2000여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정모소령은 “국토를 보호하는 일도 국방의 임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진화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삼척·동해〓남경현·이명건기자>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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