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급격한 경제변동땐 건물 월세 깍아줘야"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12분


IMF사태 등 경제사정에 큰 변동이 있다면 건물 주인은 임대차기간 중에도 세입자의 월세(임차료)를 깎아주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돼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돼 있다가 98년 ‘전세대란’ 때 관심을 모았던 세입자의 감액(減額)청구권을 인정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단독25부는 23일 1998년 3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울 신사동 S빌딩 2개층을 보증금 3억9000만원, 월세 1200만원에 빌렸던 H사가 그해 6월 “IMF사태로 인근 임차료가 폭락한 만큼 월세를 깎아달라”며 낸 차임감액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문감정인의 감정 결과와 당시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1998년 6월 해당 건물의 월세가 40% 이상 폭락하고 주변상권(商圈)이 크게 위축되는 등 법률상 감액청구의 근거가 되는 경제사정의 변동이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감액청구에 이른 경위 △월세가 폭락했다가 다시 오른 점 △H사가 재계약을 원했으나 거절당한 점 등 이 사건 계약의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적정 월세는 1200만원보다 19.2% 싼 970만원이 합당한 만큼 피고는 그 차액 등 5700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IMF전세대란’ 때문에 1998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운영됐던 서울지법 임대차 전담재판부에 접수된 감액청구 소송은 수백건에 달하지만 대부분 사전 조정되고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한 경우다.

<부형권·김승련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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