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치료비 못준다" 보험사 소송 남발

  • 입력 2000년 2월 6일 19시 49분


자동차 손해보험사들이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상대로 치료비 지급보증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소송을 ‘남발’해 영문도 모르고 소송에 휘말린 보험가입 환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투병-법정싸움 이중고▼

이들 보험사들은 특히 장기입원 환자에 대해 ‘과잉치료’나 ‘사고와 관련없는 환부치료’라는 이유를 내세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판결이 나기까지 보통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상 한푼의 치료비도 못받고 법정싸움에 휘말리는 ‘이중고’를 겪는 실정.

지난해 8월말경 운전중 뒤차의 추돌사고로 목을 다쳐 5개월째 입원치료중인 이모씨(52·강원 강릉시 상지1동)는 최근 병원측으로부터 느닷없이 200만원이 넘는 치료비 청구서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병원측은 “S보험측이 병원에 치료비 지불보증 중단통보를 해왔다”며 “밀린 200여만원의 치료비를 빨리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보험사측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확인하고 항의했지만 보험사의 담당직원은 “진료비 지급에 미심쩍은 항목이 있어 소송을 제기했다”며 “판결이 날 때까지 치료비 지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장기간의 입원치료로 실직까지 당해 생계조차 위협받는 마당에 일방적으로 치료비 지급을 중단하는 보험사측의 처사에 속수무책”이라며 보험사측의 ‘횡포“를 성토했다.

3년전 마주오던 승용차가 차선을 넘어 들이받는 바람에 허리를 다쳐 통원치료중인 정모씨(52·서울 성북구 성북2동)는 지난달 중순 법원에 출두하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업계 "사이비방지 고육책"▼

그동안 보상처리를 담당한 B보험사측이 “정씨의 상태는 기존의 허리디스크가 악화된데 따른 것이라는 자문의료진의 소견에 따라 더 이상 치료비를 지급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 법원에서 정씨의 법정출석을 요구해온 것.

정씨는 “그동안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악화돼 고통을 겪는 환자를 짓밟는 보험사의 행태가 어처구니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피해자들의 불만에 대해 손해보험사들은 IMF사태이후 보험사기가 급증한 데 따른 ‘고육책’이며 특히 입원기간이 길수록 많은 보상금을 받아낼 수 있는 점을 악용한 ‘사이비 환자’들을 막기 위한 자구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

▼작년 소송 2배이상 늘어▼

그러나 해당 피해자들은 보험사측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대다수가 지루한 법정공방에 지쳐 중도포기하기 일쑤라며 결국 보험사측이 원하는 대로 합의해 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A보험사의 한 영업직원은 “합의를 못보고 입원하는 사례가 늘게 되면 해당 지점이나 직원에게 질책이 떨어진다”며 “회사차원에서도 가급적 진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손보사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청구소송’ 건수는 450건으로 98년 회계연도의 210건에 비해 배이상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보험사측이 ‘가짜 환자’를 가려낸다는 이유로 소송을 남용하는 바람에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지만 현재로선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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