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유권자 "이젠 바꾸자" 열풍

  • 입력 2000년 1월 19일 20시 13분


‘냉소에서 참여로.’

정치와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과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낙천(落薦) 낙선(落選)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방관자적 자세를 보여왔던 유권자들이 선거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정치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 바꿔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불신과 냉소에서 벗어나 ‘이젠 내가 바꿀 수 있다. 내가 직접 바꿔보겠다’는 적극적인 참여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가장 큰 변화의 기류는 정치냉소주의가 가장 심한 20, 30대 젊은층에게서 감지되고 있다.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 등의 사이버 공간엔 선거에 대한 젊은이들의 참여와 주장이 폭증하고 있다.

12일 개설된 총선시민연대의 홈페이지(www.ngokorea.org)엔 이튿날부터 매일 1만여명의 유권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유권자게시판에 ‘부패정치인을 몰아내달라’는 당부와 격려의 글을 올린 유권자만도 매일 3000여명에 이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각 시민단체의 홈페이지에도 유권자들의 반응이 폭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장 내용의 수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격렬하고 원색적인 비난 일변도이던 것이 최근엔 정치발전에 대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로 현격하게 바뀌고 있다. PC통신의 토론코너와 시민단체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최근 이슈화된 낙선운동과 관련해 ‘어떻게 부패한 정치인을 퇴출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 방안들이 줄기차게 오르고 있다.

심지어 정치인들에 대한 비리나 잘못된 행태를 수집해 제보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록 확인할 수 없는 풍문 수준의 것들이 많긴 하지만 총선연대에 들어온 제보만도 최근 열흘 동안 500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열기는 사이버공간에서만이 아니다. 총선연대엔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자원봉사자로 돕고 싶다는 전화가 하루에도 100여통씩 쇄도하고 있다. 현재 2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는 총선연대측은 이들이 몰려올 경우 어떤 일거리를 줘야 할지 오히려 걱정해야 할 정도다.

시민들의 성금도 답지하고 있다. 총선연대엔 하루 평균 100여만원의 성금이 익명의 유권자들로부터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모두 1만∼2만원 단위의 쌈짓돈들이다. 경실련 등 다른 시민단체들에도 고사리 성금이 계속 답지한다는 것.

이같은 유권자들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면서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87년 민주화항쟁과 같은 ‘시민 선거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참여열기가 계속 이어져 그동안 투표 자체를 거부해 온 50∼60%의 거대한 부동층(浮動層)이 투표에 참여할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회사원 우상용씨(29·데이콤)는 “그동안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밀실공천으로 멋대로 후보를 내놓고 그 중 하나를 뽑으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정치가 외면당했던 것”이라며 “신뢰할 만한 후보가 나오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칫하면 고질적인 지역주의나 금권선거 등이 되살아나면서 선거분위기가 혼탁해질 경우 이같은 폭발적인 관심도 결국 ‘일회성’으로 묻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孫浩哲)교수는 “최근의 열기는 일회성일 수도 있어 낙관 일변도로만 볼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이런 열기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며 앞으로 발전적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철·이완배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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