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고엽제 피해자증언]"철모에 담아 맨손으로 뿌려"

  • 입력 1999년 11월 18일 23시 03분


60년대말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고엽제가 대량으로 뿌려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가운데 당시 고엽제 살포 작업에 참여했다 30년 가까이 피부병 호흡곤란 등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방독면 등의 보호장구는커녕 대부분 “철모에 고엽제를 담아 맨손으로 뿌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구 서구 비산 2동 강모씨(54)는 18일 “강원 양구군 모부대 화기소대 분대장으로 근무하던 68년 7월경 미 군사고문관의 감독하에 이틀에 걸쳐 부대 동료 4명과 함께 철모에 노란 약물을 받아 맨손으로 비무장지대 곳곳에 뿌렸다”고 말했다.

강씨는 “그후 등과 허벅지 등에 생긴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3명의 딸도 모두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사는 박모씨(53)도 “68년 5,6월경 경기 연천 모사단 화기분대 근무중 고엽제 살포작업에 동원됐다”며 “손으로 조작하는 재래식 분무기를 사용하다 작업 효율이 떨어져 아예 양동이에 약품을 타 바가지로 직접 뿌렸다”고 말했다.

박씨는 “제대후 체중이 급감하고 호흡곤란과 저혈압 증세에 시달려 왔다”며 “그동안 종합병원을 돌아다니며 정밀검진을 받아봤지만 뚜렷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68년 6월초 강원 양구군 동면 팔랑리 중동부전선에서 군복무를 한 강평원(姜平遠·52 경남 김해시 구산동)씨도 “어느 날 미군 병사가 차에 싣고 온 드럼통에 담긴 액체를 분대원들과 함께 두달간 매일 초소 앞에 뿌렸다”며 “철모에 담아 맨손으로 뿌리는 사병들도 많았고 작업화 안에 늘 액체가 흥건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하지만 물이 귀해 작업후 제대로 씻지 못했고 때로 피부가 벌겋게 부어 올라도 땀띠로 여기고 지나갔다”며 “이 액체가 그 무서운 고엽제인줄도 모른 채 귀찮은 풀베기 작업을 안해도 된다며 기뻐하는 병사들도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구·김해〓정용균·강정훈기자〉cavat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