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찰청 조사과 실상②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22분


《‘사직동팀’이라 불리는 경찰청 조사과에 대한 동아포커스팀의 이슈추적 첫회가 나가자 반향은 뜨거웠다. “아직도 그런 조직이 활동하고 있느냐”는 놀라움과 함께 굴절된 과거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가운데 사직동팀의 한 현직 고위간부가 9일 동아포커스팀과의 만남을 요청해 왔다.

“98년 봄 조사과 업무를 인계받았을 때 주 업무라 할 수 있는 공직자 사정에 관한 건은 몇건에 불과했다. 조사과가 그동안 본연의 업무외에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한 어조로 말을 꺼낸 그는 “그러나 그후 어떤 불법적인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밖에선 여전히 계좌추적을 할 것이라고 의심하는데 DJ비자금 사건에 데어서 금융 관련기관에 그런 요청을 할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당부의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공직자 비리와 청와대에 접수된 진정사건 외에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비리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일도 하고 있다. 과거의 관행과 기준만으로 우리를 보지 말아달라.”

그의 말처럼 사직동팀은 과연 과거와 달라졌을까.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의 소지는 없을까. 사직동팀의 오늘을 파헤쳐 본다.》

‘정부 ○○부처 1급 간부 ○○○가 95년 ○○사업과 관련해….’

이른바 사직동팀, 즉 경찰청 조사과는 최근 이렇게 시작되는 보고서 한건을 청와대에 제출했다. 지난해 말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벌인 한 고위공직자의 비리혐의에 대한 내사 결과였다. 그 내용은 청와대를 거쳐 검찰로 넘어갔고 문제의 공직자는 곧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지난 주말까지도 사직동팀이 자신을 상대로 그런 내사를 벌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직동팀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조사과의 한 간부는 “우리는 내사 사실이 당사자에게 노출되면 즉각 내사를 중단한다”고 전했다. 조사과의 내사를 거쳐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소환된 사람들은 조사받은 사실을 평생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한다.

실제로 동아일보 이슈 추적팀이 최근 수년간 사직동팀의 조사 대상이 됐던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한결같이 “내가 조사받았는지 여부는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 “제발 묻지말라”며 입을 다물었다.

팀원들도 최정예 정보 수사요원들로 채워진다. 한 현직 조사과 간부는 “대한민국에서 정보와 내사 기능에서 우리 팀만큼 기민하고 능력이 뛰어난 집단은 없다”고 자부했다. 사직동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이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 정권은 철저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사직동팀 간부진을 채웠다. 현 과장은 전남 고흥 출신인 최광식총경.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본청에서 기획통으로 날렸던 인물이다. 72년 사직동팀이 만들어진 이래 호남출신 팀장(조사과장)은 최씨가 처음이다. 팀원들도 전 정권까지만 해도 호남출신은 업무상 야당을 맡는 한 두명에 불과했다.

경찰서장급인 과장 밑의 요원들은 경찰청장이 경장급 이상 중에서 5배수를 청와대에 추천한다. 현 정부 출범후 35명 가량되는 직원 중 70%가량이 물갈이됐다. 외근조직은 5개 반에서 6개반으로 개편됐고 서무반이 따로 있다. 각 반마다 지역 기능 행정부처별로 담당업무가 주어진다.

한 전직 간부는 “조사과원들은 사명감과 승진이 남보다 빠를 수 있다는 기대 하나로 죽어라 열심히 일한다. 각 반끼리 경쟁이 치열해 사직동내의 분위기는 매우 조용하다. 위계질서가 엄격해 상급자에겐 함부로 말조차 건네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직동팀은 직제상으론 엄연한 경찰 공식 조직이지만 형사국장 주재 회의에 참가는 물론 보고도 안한다. 직속상관인 청와대 법무비서관(예전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에게서만 지시 받고 내사결과를 중요도에 따라 A∼D등급으로 나눠 법무비서관에게 보고한다.

법무비서관은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사안에 따라 덮어두든지 아니면 대검중수부 서울지검특수부 경찰청특수수사과 등으로 넘긴다. 내사결과를 넘겨받은 검찰이나 경찰은 영장청구 등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수사에 들어간다. 사직동팀의 전 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사정 당국이 개가를 올린 공정위부위원장 수뢰,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수뢰, 조선대총장 수뢰, 한국통신의 대선자금 2억원 전달 적발 등이 모두 사직동팀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물론 다른 기관들도 있어서 특정 사건이 딱히 어느 기관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직동팀이 여전히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직동팀은 어떤 방법으로 이같은 성과를 올리는 것일까.

94년 5월부터 2년 8개월간 사직동팀의 ‘이웃동네’라 할 수 있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을 지낸 엄호성(嚴虎聲)변호사는 “고위공직자 내사는 전화통화명세를 뽑아 자주 통화하는 사람과의 관계 등을 조사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과가 청와대에 올리는 보고는 100% 정확하다”며 “이처럼 정확한 정보는 미행 계좌추적 감청 등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사직동팀이 미행 계좌추적 감청 등 불법 수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일부 야당의원들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사직동팀이 내 계좌는 물론이고 동생계좌까지 추적하고 다닌다”며 “사직동팀이야말로 현 정부들어 가장 기능이 강화된 무소불위의 정권안보용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의원은 97년 대선 때 사직동팀이 만든 당시 김대중(金大中·DJ)후보 친인척 계좌 불법 추적자료를 넘겨 받았던 장본인이다.

야당가에선 사직동팀이 기업인들의 재산 해외도피 등 비리와 약점을 내사, 재벌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압박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사실 사직동팀이 마음만 먹으면 영장 없이 금융감독기관의 계좌추적권을 이용할 수도 있다. DJ비자금 계좌추적에 참여했던 전 은감원 검사역은 “당시에도 은행 수시검사 방식을 취해 합법의 외피를 썼지만 내용은 탈법이었다”며 “현재도 이같은 절차는 변함이 없어 불법 계좌추적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한 현직 사직동팀원은 “솔직히 새정부 출범 후에는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청와대측의 신념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선(朴柱宣)청와대법무비서관도 “계좌추적은 물론이고 불법적인 방법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김상우(金相宇)검사6국장도 “현 정부들어 사직동팀으로부터 계좌추적 협조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설령 ‘불법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정부측의 설명이 진실이라 해도 조직의 특성상 사직동팀이 정권의 손발로 악용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는 점이다. 제도가 아니라 청와대 비서관의 지시로 움직이는 비밀경찰식의 조직 운용, 개인 비리에 관한 한 여타 정보기관을 압도하는 정보량 등이 우선 그렇다.

만의 하나 통치권자가 사직동팀을 정권안보용으로 활용할 경우 그 폐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검찰 안기부가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해도 사직동팀의 현 운용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공권력의 정치중립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현직 조사과 간부는 “사실 현 정권 출범 때 정권 내부에선 사직동팀을 해체할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팀이 해체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비리 정치인이고 그 다음이 고위공직자들이다. 사직동팀이 없어도 검경(檢警)이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공개된 조직으로는 보안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그러나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시민감시국장은 “입만 열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는 현 정권이 사직동팀을 과거 정권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운영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고위공직자 비리 내사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해도 그런 기능은 비리조사처, 특별검사제 등의 공식적인 기구를 만들어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률, 행정학자들간에는 고위공직자 비리 내사기능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의견이 엇갈렸지만 편법적인 운용 방식을 벗어나 투명한 기구로 재편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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