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24시(上)]깡소주 마시며 자포자기

  • 입력 1998년 5월 24일 20시 36분


일주일간 ‘실직’노숙자의 세계로 파고 들어갔다.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회한과 고통을 들여다보고 또 그들의 눈으로 바깥세상을 내다봤다.

왠지 ‘먹물’ 냄새가 난다며 기자의 접근을 꺼리던 실직자들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동지적 연대감’을 느낄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들의 생생한 고뇌와 좌절, 불만을 몰래몰래 취재수첩에 옮기는 것조차 극도로 조심스러웠다.

▼ 16일 ▼

오전11시경 버스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막연한 초조감은 서울역 1층대합실을 꽉 메운 꾀죄죄한 차림의 노숙자들을 보는 순간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일주일간 여기서 자고 먹고해야 한다니….

서울역 1층대합실 TV앞에 1백50여명의 실직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TV에는 관심이 없는 듯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 대부분. 옆에는 30여명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서울역 뒤편 서부역으로 이어지는 통로 등 역주변 곳곳에서 1백여명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대낮부터 술이라니….’

대합실 의자 뒤에 널브러져 있는 40대 남자 주위에 다른 노숙자 3명이 둘러앉아 “아침부터 꼬꾸라지더니 아직 못 일어나네. 들어온 지 한달도 안돼 폐인되는구나”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쓰러져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거나 급식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후 4시반. 한국노총 회원 8명이 빵과 우유를 나눠주자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토요일인 이날은 용산역에서 주는 점심급식이 없어서인지 빵봉지를 2,3개씩 챙겨두는 사람이 많아 더욱 결사적이었다.

오후 9시경 대우빌딩앞 남대문지하도에서 급식되는 쇠고기국밥을 먹은 뒤 12시경 라면박스와 신문지를 구해 서울역 1층대합실에 몸을 뉘었다. TV소리와 술판을 벌인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자리를 옮긴 지하통로도 사정은 마찬가지.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냉기와 곳곳에서 울려오는 고함소리, 술주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잠을 자는 2백여명의 노숙자들이 신기해보였다. 자는 듯, 마는 듯 눈을 붙였다.

▼ 17일 ▼

오전6시경 지하통로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잦아지자 더 이상 잘 수 없었다. 겨우 하루를 잤는데 머리가 아프고 목이 따끔거렸다. 허리 한쪽이 심하게 결렸다.

서울역광장 가로대 여기저기에 앉아 아침부터 빈 속에 ‘깡소주’를 들이켜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술기운으로 아픈 몸을 마취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최근 서울역 주변에는 지방에서 온 실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각종 종교 및 사회단체의 급식이 늘면서 일단 이 곳에 오면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이다.오전10시경 ‘깡소주’를 마시고 있던 정모씨(36)와 이모씨(44)사이에 끼어들었다.

정씨는 부산에서 자개농방을 하다 부도를 낸 뒤 빚쟁이들의 독촉을 피하고 물품대금도 받아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3일전 상경했다. 친척집이 서울에 있지만 창피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서울역으로 나오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충남 조치원에서 닭 4만마리를 키우다 IMF사태로 사료값이 오르고 닭똥거름이 팔리지 않아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닭들을 모두 굶겨 죽인 뒤 딸을 고향 부모님에게 맡기고 두달전 무작정 상경했다.

한달전만 하더라도 당당한 시민이요,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이었던 사람들이 자포자기 상태에서 알코올에 몸과 마음이 마비된 채 부랑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IMF가 끝난다 해도 이들이 쉽사리 사회와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 18일 ▼

노숙자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시한폭탄’이라고 할까.

오전 10시경 서울역광장에서 술병을 들고 있던 방모씨(41) 일행을 만났다. 방씨 등은 “부자동네와 부자교회에서는 ‘꼬지’도 잘 안된다”며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곽모씨(39)는 “영삼이를 비롯해서 정치인들이 환란을 초래한 주범이면서 애꿎게 우리들만 ×돼 부렀다”고 정치인들을 성토했다.

오후 4시반경 탑골공원 급식행렬 속에서도 정부와 ‘가진 자’에 대한 이들의 울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10시20분경 이들이 갖고 있는 울분이 계기만 주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 벌어졌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20대 남녀 7,8명이 길을 가다 실직노숙자중 한명과 부딪쳐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이 생기자 순식간에 대합실과 역사 주변에 있던 1백여명의 노숙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끼리 싸우다가 실직자가 외부인과 시비가 붙자 순간적으로 놀라운 결속력을 보여준 것.

길 가던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무렵 역전파출소 직원 10명가량이 뛰쳐나왔다. 노숙자중 일부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역전파출소로 급히 도망간 행인들을 쫓아갔다. 한동안 파출소가 난장판이 됐다.

<선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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