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쟁점대담 中]사업비 적정한가?

  • 입력 1998년 4월 5일 20시 32분


◆ 참석자

찬:손의영(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교수)

반:박병소(서강대 물리학과교수)

손의영교수〓감사원이 발표한 고속철도 예상 건설사업비 22조원은 꽤 늘려잡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관련 법규에 사업비는 사업운영 개시연도까지 들어가는 비용만 계산하도록 돼 있습니다. 감사원 계산에는 공단 운영비까지 포함됐습니다. 총사업비와 총비용의 개념을 혼동한 것 같습니다.

박병소교수〓정부가 고속철도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전부 포함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열차도 추가 도입분이 들어와야 고속철도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개통시점까지의 비용만 총사업비로 산정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사업비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과연 경부고속철도 사업비 산정이 적절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 전문잡지에 실린 세계 각국 고속철도 비용을 보면 85년 기준으로 프랑스 일본 미국이 모두 1㎞당 30억∼50억원 안팎이었습니다. 경부고속철도는 무려 7,8배 이상 많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손교수〓현재 비슷한 규모로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추진중인 대만에서는 건설비용을 1㎞당 4백억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1㎞당 4백50억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17조원이면 서울∼부산 구간에 고속도로를 1개반 정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속철도는 고속도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송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을 따지면 철도가 훨씬 앞섭니다.

박교수〓고속철도가 경제성이 높다는데 찬성할 수 없습니다. 고속철도의 경제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용자가 30만∼5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현재의 교통 여건에서 서울∼부산을 오가는 인구중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수는 3만명 남짓합니다. 철도청에 따르면 철도승객이 배로 늘어나는 데는 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결국 2005년경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승객은 6만∼7만명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운임도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85년에 올랜도에서 마이애미에 걸쳐 5백30㎞ 고속철도를 놓는다고 가정하고 운임을 60달러로 계산했습니다. 요즘 환율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10만원 가량입니다. 일본 신칸센도 2만엔으로 20만원 가량 됩니다. 이렇게 비싼 운임으로 승객 6만명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손교수〓경제성을 따질 때는 운행비용 절감과 시간단축 효과 등 국민적인 편익을 포함해서 계산합니다. 경부고속철도 운임은 1㎞당 68.5원씩, 3만원으로 책정해놓고 있습니다. 서울∼부산 항공요금의 70%선입니다. 서울∼부산을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하루 경부축의 수요는 22만명에 달합니다. 외국과는 달리 경부고속철도의 경제성 분석에는 대기오염과 교통사고 감소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박교수〓그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전에 나온 계산수치입니다. 모든 상황이 바뀌었는데 그런 계산이 아직도 유효할까요.

손교수〓IMF 체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할 수 있습니다. IMF로 이자비 등은 늘겠지만 인건비 등 공사비나 운영비가 줄면서 서로 상쇄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박교수〓경부고속철도 구간의 72%를 터널과 고가로 만드는 것도 비용을 늘린 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교수〓대만도 한국과 비슷합니다. 70% 정도의 구간이 터널과 고가이고 지상구간은 별로 없습니다. 일본 신칸센도 지형의 특성상 고가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교수〓현재와 같은 방식을 고집, 공사를 계속하면 고속철도 건설비는 개통시점에 4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사업비가 늘어난 것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87년 대통령선거공약때5조8천억원에서5년마다 두배가량늘어났습니다. 2005년에 다시 두 배 이상으로 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손교수〓원래 사업비는 당해연도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한 경상가격으로 바꿔 계산하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인건비만 해도 93년에서 96년 사이에 1.6배가 올랐습니다. 경부고속도로도 완공해놓고 보니 당초 사업비의 3배가 되지 않았습니까.

박교수〓경부축에만 계속 투자를 해서 과밀화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는 고속철도를 쌍복선으로 만들어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철도는 백년대계이므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경부선과 호남선의 불균형이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에서도 다시 나타날 것이 분명합니다.

손교수〓고속철도와 같은 대형 사업에는 경제적 효율성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정치적 입김이 개입되기 쉬운 지역간 형평성 문제를 효율성과 함께 논의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경부고속철도가 건설되면 호남선 열차편성이 늘어나고 호남선 수요가 늘어 호남고속철도 건설이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박교수〓고속철도가 2000년 이후에도 첨단 기술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독일 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자기부상열차는 출발 후 시속 3백㎞에 도달하는데 5㎞만 달리면 됩니다. 때문에 중간 정차역을 많이 세울 수 있고 에너지 소모가 고속철도보다 30% 이상 줄어듭니다.

손교수〓자체 기술축적이 없이 고속철도 건설을 시작해 시행착오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실용화도 되지 않은 자기부상열차를 도입한다면 그 시행착오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도입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박교수〓미래의 기술 변화를 감안할 때 사업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단계에서 ‘한다’ ‘안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범정부 위원회를 구성해 경부고속철도에 대해 1년간 근본적인 재검토 작업을 벌여야 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계속할 것이냐, 중단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손교수〓경부고속철도는 계획단계의 준비부족과 정치적인 입김 그리고 기술부족 등으로 희생양이 됐습니다. 경부고속철도를 편향된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비판과 토론도 전문성의 토대 위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엄청난 재원이 들어간 경부고속철도가 하루 빨리 완공돼 국민에게 편익이 돌아가야 합니다.

〈정리〓이 진·황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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