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志雄(유지웅)상경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2일 오후 한양대 후문 앞 성동교 부근은 연 나흘째 폭력시위를 계속한 한총련 소속 학생시위대와 진압경찰간에 전쟁을 방불케하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 성동교 등 한양대 주변 일대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첫 충돌한 시간은 고려대에 모여 있던 대학생 5천여명이 지하철을 이용, 뚝섬역에 내려 성동교 북단부근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오후 7시35분경.
처음 성동교 남단부근에 3개중대를 배치, 학생들을 막던 경찰은 시위 인원이 점차 불어나자 3개중대를 추가로 투입했다. 같은 시간 성동교 남단에서 1백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한양대 지하철역앞과 한양대 후문부근에서도 경찰 3개중대와 2개중대가 각각 시위 학생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8시경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은 세곳 모두에서 학생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어 한양대 지하철역과 후문부근에서 경찰의 저지선이 뚫리며 성동교 남단 부근에 있던 경찰 6개중대는 앞뒤에서 학생들의 협공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6개중대중 1개중대가 성동교 남단에서 학생들에게 포위됐고 나머지 5개중대는 제대로 대열도 이루지 못한채 시위대 학생들과 뒤섞여 허겁지겁 성동교 북단쪽으로 후퇴했다. 유상경이 소속된 중대도 이들 중에 포함돼 있었다.
유상경과 같은 소대 소속으로 당시 가스차에 치인 박모씨(21)는 『급하게 후퇴하다 가스차에 치이거나 깔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도 허둥대다 넘어져 곧바로 가스차에 오른쪽 어깨가 깔렸다』며 『유상경도 가스차에 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위학생들도 『당시 성동교 북단으로 후퇴하던 전경중 일부가 가스차에 치이는 것을 봤으며 동료들에 밀려 쓰러지는 전경들도 눈에 띄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에 밀려 행당여중쪽과 한양대 후문 앞 중랑천변으로 밀려난 경찰은 오후 8시40분경 추가로 9개중대를 증원 투입, 성동교 북단부근에 있던 시위학생들을 다시 남쪽으로 밀어붙여 가까스로 해산시켰다. 유상경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이현두·부형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