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시위를 진압하다 숨진 柳志雄(유지웅)상경의 아버지 柳海圭(유해규·57·아파트 경비원)씨와 어머니 金吉子(김길자·53)씨는 2일 밤 10시50분경 아들의 빈소가 마련된 경찰병원 영안실에 도착한 뒤 한동안 아들의 사망이 믿어지지 않는듯 멍한 표정이었다.
저녁식사도중 아들이 시위진압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날벼락같은 연락을 받고 남편 유씨와 함께 허둥지둥 뛰어온 김씨는 『내가 빨리 지웅이를 만나 치료해줘야 하는데…』라며 『지웅이에게 데려다 달라』고 울부짖다 밤 11시9분경 끝내 실신, 응급실로 옮겨졌다.
아버지 유씨는 『올 2월에 정기휴가를 나와 만난 것이 마지막이 됐다』며 『지웅이가 지난 2월 입대한 후에도 일주일에 서너번씩 꼬박꼬박 집으로 전화해 안부를 물어왔는데…』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유씨는 『경상남도에서 근무하던 지웅이가 한총련 시위를 막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유상경의 사촌형 柳鍾錫(유종석·34·회사원)씨도 『퇴근후 TV를 보다 지웅이 이름이 나와 집에 전화를 했더니 경상남도에 있다고 해 안심했는데 죽은 전경이 지웅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의 시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유씨는 유상경의 누나 지선씨(24)에게 동생의 죽음을 알리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유상경은 지난 94년 농구특기생으로 전남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농구부가 해체되자 1학년 2학기에 휴학하고 96년 2월 입대해 경남경찰청 전투경찰대에서 근무하다 지난달 29일 한총련 시위 진압에 차출됐다.
자정이 넘어 영안실에 도착한 유상경의 동료 20여명은 『1m90의 키로 고교시절 농구선수였던 유상경은 부대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면 언제나 최우수선수였으며 희생정신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부형권·이명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