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최고인민회의 15기 회의서 ‘영토조항’ 신설
‘국경선’ 구체적 위치 언급 없어 분쟁 상황은 회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2024.6.6 ⓒ 뉴스1
북한이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해 영토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지난 2023년 12월 ‘남북 두 국가’ 선언 후 이어진 각종 조치가 국가의 최상위 법인 헌법에도 반영된 것으로, 남북관계를 ‘항구적 두 국가 관계’로 고착하려는 기조가 계속 강화되는 모양새다.
‘남북 두 국가’ 기조 최상위 법에 반영…‘절대적 가치’ 됐다
이정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개정된 북한 헌법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개정은 지난 3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15기 1차 회의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영토조항 신설이다. 이는 북한이 남한(한국)을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으로 보지 않고 완전히 체계와 정체성이 다른 ‘다른 나라’로 보겠다는 항구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영토조항은 제2조로 새로 반영됐다. 기존 2조에 북한은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국가다’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명시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이 2조가 삭제되고 영토조항으로 대체된 것이다.
새 영토조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됐다.
이 외에 영토조항과 관련한 다른 내용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는데, 북한은 일단 임의로 남한과의 ‘국경선’의 구체적 위치를 선언하진 않으면서 포괄적으로 새 영토·영해·영공에 대한 정의만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정부는 북한이 동·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이나 육상 접경지의 군사분계선(MDL) 등 한국전쟁 이후 유지하고 있는 분계선을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영토·영해·영공의 범위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일단 이같은 상황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개정 헌법의 내용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는데, 이는 북한도 아직은 새 영토조항을 통해 ‘분쟁’ 상황을 만드는 것은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울러 영토조항에 남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암시하는 표현도 반영하지 않았다.
이정철 교수는 “해상 경계선 얘기가 나오는 순간 (남북 양측이) 타협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이 빠진 것은 북한도 분쟁 요인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일 수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다만 “규정을 만든 이상 이것에 준해서 여러 가지 지침을 만들어갈 것인데, 이 과정에서 국제 환경이나 남북관계 등의 변수가 작용하는 측면이 있을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북한이 헌법에 기초한 하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세의 변화 등을 반영하면서 가변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신설 영토조항이 ‘당장의 남북 분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수준으로 구성되진 않았지만, 북한이 최상위 법인 헌법에 ‘두 국가’ 기조를 담았다는 것은 북한이 과거의 통일정책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국가’가 최고지도자도 지켜야 할 헌법이 됐다는 측면에서다.
하위법 개정 과정에서 분쟁 소지 불거질 가능성…‘노동당 규약’ 변화도 변수
북한은 194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 회의에서 처음으로 헌법을 채택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해왔는데, 영토조항을 신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새로 규정하고,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영해·영공을 규정하는 조항을 만들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헌법을 개정하며 이름을 ‘사회주의 헌법’에서 ‘헌법’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과거 남북정책이 유효할 때 구사한 ‘통일전선전술’을 폐기한 듯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시 평정’, ‘제1적대국 교양’ 등 대남 적대 문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2월 노동당 9차 대회와 3월 최고인민회의 15기 1차 회의 연설에서 대남 관련 적대적 발언을 내놓았음에도 헌법에는 ‘담백한’ 표현이 반영된 것에 대해 이 교수는 “문서는 문서고 담론은 담론이기에 각각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아울러 개정 헌법의 기조를 하위법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영토·영해·영공의 구체적 ‘범위’가 확인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북한이 이를 공표하지 않아도 북한군의 활동 등을 통해 변화한 내용이 확인될 수도 있다.
남북 접경과 경계선은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설정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 영토·영해·영공을 확정할 경우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24년 1월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NLL)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며 이례적으로 ‘남쪽 국경선’을 언급하는 등 내부적으로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확정한 것으로 보이는 동향도 나타난 바 있다.
또 3월 헌법 개정에 앞서 2월에 당 대회에서 개정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당 규약’이 북한에선 상위법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당 규약의 개정 내용까지 추가로 확인해 종합적 평가를 해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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