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만난 원폭 피해 할머니 “이런 보람 느끼려 힘들게 버텨왔구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1일 1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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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간담회서
尹 “고국에 한 번 오시라”
尹대통령과 만남에 눈물
박남주 할머니 “이런 날 맞이해 몇 번이고 눈물 나”
韓日 정상, 처음으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참배

“아무쪼록 건강하셔야 합니다. 고국에 한 번 오십시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자폭탄 피해자와의 간담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마친 뒤 옆자리에 있던 원폭 피해 1세대 박남주 할머니(91)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 할머니는 윤 대통령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뺨에 갖다대며 활짝 웃었다.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박 할머니는 윤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히로시마 원폭 동포들을 만나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동포들을 한국으로 초청한 것에 대해 “이런 보람을 느끼려고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왔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곧 재외동포청이 신설되는데 초기 프로젝트 중 하나로 희로시마 원폭 희생자 초청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일본 히로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히로시마 동포 원폭 피해자와의 간담회에서 박남주 한국원폭피해대책특별위원회 전 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일본 히로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히로시마 동포 원폭 피해자와의 간담회에서 박남주 한국원폭피해대책특별위원회 전 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당시 윤 대통령은 간담회를 시작하면서 박 할머니가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직접 의자를 뒤로 밀어주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윤 대통령보다 늦게 간담회 장소에 도착했는데 윤 대통령이 예우를 다하는 모습에 감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할머니는 주변에 “윤 대통령이 의자를 움직여 주던 게 너무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재일 동포로서 원폭 피해자로서 이런 날을 맞이한 것에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20일 유튜브 ‘쇼츠(Shorts·짧은 영상)’를 통해 윤 대통령의 손을 박 할머니가 뺨에 갖다대는 장면 등을 공개했다. (https://www.youtube.com/shorts/HSl5HmuNruk)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동포들이 원자폭탄 피폭을 당할 때 우리는 식민 상태였고 해방, 그리고 독립이 되었지만, 나라가 힘이 없었고, 또 공산 침략을 당하고 정말 어려웠다”며 “그러다보니 우리 동포 여러분들이 이렇게 타지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가 여러분 곁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고, 정부를 대표해서 여러분이 어려울 때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날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한일 양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참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총리와 유코 여사는 위령비 앞에서 일렬로 나란히 서서 백합 꽃다발을 헌화하고 허리를 숙여 약 10초간 묵념하며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도했다. 박 할머니, 원폭 피해 2세대 권준오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10명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뒤에 앉아서 양 정상 부부의 참배를 지켜봤다.

이도운 대변인은 히로시마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특히 두 정상의 참배에 우리 동포 희생자들이 함께 자리한 것이 그 의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두 정상,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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