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적폐수사’ 발언에 격노한 文…대선정국 격랑 속으로

  • 뉴시스
  • 입력 2022년 2월 10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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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현 정권을 적폐 청산 수사 대상으로 비난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해 강하게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선거 중립을 지켜왔던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수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윤 후보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윤 후보가 현 정부를 적폐로 예단해 정치 보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자 강력하게 경고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 정국의 격랑 속에 뛰어든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에 대해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박 수석은 짧은 브리핑 뒤 문 대통령의 발언 배경이나 이유 등에 대해 질문도 받지 않고 곧바로 연단을 내려갔다.

문 대통령이 정치 현안에 대해 직접 분노를 표출한 것은 지난 2018년 1월18일 이후 4년여 만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한 것과 관련, “정치보복을 운운한 데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이 전 대통령이 마치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을 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건 윤 후보의 지난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가 발단이었다. 윤 후보는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누차 강조하곤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분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례적으로 수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검찰개혁 미완의 ‘책임’이 있는 윤 후보가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현 정권을 적폐 청산 대상으로 치부한 데 대한 강한 불만으로 읽힌다.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정치적 중립 원칙을 깨뜨릴 만큼 윤 후보의 비판이 상식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선 경선 레이스 시기부터 참모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스스로도 관련 발언을 삼갔다. 청와대 차원에서 간혹 야권 후보의 발언을 대응했지만 수위는 조절됐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가 야권 후보로 거론되던 지난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두둔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윤 후보를 검찰총장로 임명할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 개의치 말고 엄정하게 비리를 척결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도리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 후보가 현 정권을 적폐로 돌린 ‘자기 부정적’ 태도를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라고 물은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윤 후보가 전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라고 그러는데 사기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이에 대해서 발언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운명’ 저서에서 ‘운명적 동지’라고 밝힐 만큼 각별한 사이였던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같은 분노에 한몫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공개된 AP·교도·타스·신화·로이터·EFE·AFP통신, 연합뉴스 등 아시아·태평양뉴스통신사기구(OANA) 소속 국내·외 8개 통신사와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가 없다”면서 특히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윤 후보를 겨냥하는 듯 발언했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에 대해 작심 비판을 하면서 대선 정국은 한동안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 지지층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결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정치적 보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 후보를 지지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개입이 아니라 윤 후보의 발언에 대한 반론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당장 반발에 나섰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불법이 드러나는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론적 의견을 피력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향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명백한 선거 개입 시도”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사실상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서 처리돼야 한다는 말을 (문 대통령에게) 드려왔고, 제가 검찰 재직할 때와 정치 시작하고 오늘에 이르까지 전혀 변화가 없다”면서 “그런 면에서는 문 대통령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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