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定石)은 어디 가고, 강수 꼼수만…”[이진구기자의 대화, 그 후- ‘못다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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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조훈현 편 ②

사진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사진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국수(國手) 조훈현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가 국회의원이 된 지 2년이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속한 자유한국당은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과 혼란만 난무한 상태에서 두 달 후 지방선거를 치러야 했습니다. 당 개혁이라는 정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는 아노미 상태인 당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러더군요. “사실 바둑도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누가 더 실수를 많이 하느냐로 갈릴 때가 더 많다”고요. 솔직히 믿기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에 반사이익이 다반사이긴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제대로 된 노력은 없이 내부 분란만 가중되는 정당이 다시 일어설 거라 생각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자유한국당은 이 지방선거에서 대구, 경북을 제외한 전 광역지자체에서 전멸합니다. 그리고 2020년 20대 총선에서도 말 그대로 ‘폭망’했지요.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국민의힘이 특별히 뼈를 깎는 노력이나 혁신을 한 것도 아닌데 그의 말처럼 현 정권의 숱한 실정으로 이번 4·7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으니까요.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와 당시 새누리당도 외부의 힘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정과 강변, 억지, 진박 논쟁 등으로 민심이 떠나 무너졌지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검찰개혁,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문빠’ 등 강성 친문 세력의 발호 등을 보면 데자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국회 당 대표실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플래카드는 걸었는데 그 말대로 되가는 것 같네요. 안타까운 점은 양대 거대 정당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반사이익으로만 이기다보니 정권은 바뀌어도 여전히 정치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늘 기다리다보면 반사이익으로 이기다보니 굳이 힘들게 자기 혁신을 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정치의 정석(定石)은 언제나 돼야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스스로 정치 하수라고 했지만 그의 말을 곱씹어보면 정말 하수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세 번째 인터뷰는 2019년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던 날이었지요. 그는 “크게 보면 살 길이 있는데 황 대표가 과연 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국당은 당 내 인사들의 5·18 망언으로 국민적 지탄은 물론이고 내홍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망언도 문제지만 징계도 미약했지요. 그는 “돌 몇 개 잡는 것보다 대국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이나 당의 입장보다 전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는 뜻이지요. 황 대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도 대다수 국민이 인정한다면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정치는 국민을 보고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당시 한국당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이었고 이듬해 21대 총선에서도 역시나 ‘폭망’합니다. 바둑에서 ‘귀신보다 무섭다’는 자충수를 둔 것이지요.

여담입니다만 바둑을 좋아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조 국수를 연희동 자택으로 불러 몇 차례 바둑을 뒀다더군요. 아마 초단 또는 2단 정도의 실력인데 9점을 놓으면 조 국수가 지고 7점을 깔면 비슷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의 기질대로 수비고 뭐고 없는 엄청난 싸움 바둑이었다고 합니다. 내친김에 “혹시 대국료를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세간에 전 전 대통령이 주는 금일봉은 생각하는 것에 0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손이 크다는 말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가 마침 재판장에서 그가 “전 재산이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했을 때였다는군요. 전 전 대통령이 미안한데 그 말이 워낙 퍼져서 대국료를 줄 수가 없다고 했답니다. 그 뒤로는 못 봤다고 하네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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