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고·고려대 동문, 야권 ‘대선 승리’ 디딤돌 놓았다

  • 주간동아
  • 입력 2021년 4월 10일 10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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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심 가득한 범생이” 오세훈, “농구 좋아한 리더” 박형준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박형준 당시 부산시장 후보가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단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박형준 당시 부산시장 후보가 손을 맞잡고 있다. 공동취재단
대일고·고려대 출신 두 인물이 서울, 부산 수장을 맡았다. 두 도시 41개 선거구 모두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를 따돌린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각각 57.5%, 62.7%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에서 완승했다. 대일고·고려대 동문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인연은 이번 보궐선거 승리로 다시금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 8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위중한 시기에 다시 일할 기회를 준 것은 산적한 과제를 빠른 시일 내 능수능란하게 하나씩 해결해 정말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서울 시민을 보듬어달라는 지상명령으로 알고 받들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박형준 부산시장 역시 4월 7일 오후 11시 당선이 확실시되자 부산진구 선거사무소에서 “시민들의 지지가 나 박형준이 잘나서, 국민의힘이 잘해서라고 생각지 않는다. 저희가 오만하고 독선에 빠지면 언제든 무서운 심판의 민심은 저희를 향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바짓단 복숭아 뼈 위에…”
오 시장과 박 시장은 이명박 정권 당시 각각 서울시장,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맡아 시정과 국정을 경험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곳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던 대일고(현재는 강서구로 이전)다. 박 시장은 대일고 3회 졸업생으로 오 시장의 한 학년 선배다. 박 시장이 1978년 대일고 졸업 후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오 시장 역시 한국외대 법대 입학 다음 해인 1980년 고려대 법대에 편입했다.

1994년 두 사람은 잠시 다른 길을 걸었다. 오 시장은 MBC 생활법률프로그램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쌓았으며, 박 시장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이내 두 사람은 정치권에서 만난다. 오 시장이 먼저 16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을에 입성했다. 이번 보궐선거캠프에서 비서실장을 맡은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과 고교 후배인 황정일 전 서울시 시민소통특보가 당시 보좌관으로 일했다.

박 시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부산 수영구에 출마,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차떼기당’ 논란 이후 당에 불만을 표하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오 시장에게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권유한 사람 역시 대일고 선배인 박 시장이다. 당시 동기생을 중심으로 대일고 동문 20~30명이 주요 행사장을 다니며 오 시장을 도왔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동기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오 전 시장의 급우 A씨가 대일고 동문들에게 오 시장이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나서준 일화를 담은 문자 메시지를 돌렸다.

“당시 좀 노는 학생들 사이에선 바짓단을 길게 입는 게 유행이었다. 그런데 그의 바짓단은 복숭아 뼈 위로 훌쩍 올라가 있었다. 복장 규정 그대로였다. 이쯤 되면 캐릭터가 짐작될 것이다. 유약한 범생이로만 봤는데 그 속에 숨은 의협심이 가득하고 의분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의협심이 언젠가는 좀 더 큰 차원에서 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일고 동문들에 따르면 오 후보는 학창 시절 지금처럼 존재감을 드러내는 학생은 아니었다. 동문들은 오 시장의 가정형편이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어머니의 베갯잇 장사를 도와준 경험 때문인지 조숙했다고도 회상했다. 다만 모교에 대한 애정이 커 졸업 후 동문을 모으는 구심적 역할을 맡았다. 오 시장이 대일고 출신 송상호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동생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와 연애 끝에 결혼한 점 역시 모교에 대한 애정을 더하는 요소였다. 오 시장은 첫 서울시장 도전을 앞둔 2006년 스승의날에 옛 은사인 이태준 대일고 교장의 자택을 방문해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오 시장의 고교 후배인 이종현 롯데건설 전무는 “오 시장은 동문들을 모아 은사인 이태준 선생님 집 다락방에서 직접 회칙을 만들어가며 동창회를 발기했다. 총동창회에 꼭 얼굴을 비추는 등 애정이 상당하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앞두고도 동문들과 모여 상의했다. 당시 동문들은 오 시장의 서울시장 도전에 대해 찬반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농구”
박형준 부산시장은 오 전 시장보다 활발한 이미지였다. 박 시장은 정치권에서도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린다. 2017년 JTBC ‘썰전’에서 테니스, 축구, 농구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특기로 ‘노룩패스’를 꼽기도 했다. 박 시장은 국회의원 재임 시절 보좌관들과 함께 농구를 즐기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일고 동문들이 기억하는 학창 시절 박 시장의 이미지 역시 비슷했다.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을 이끌고 농구를 하던 리더십 있는 학생이라는 것. 박 시장의 급우 B씨는 “학창 시절 박 시장은 정말 잘 웃고 또 그 모습이 예쁜 사람이었다. 성품이 원만해 여러 사람과 두루 잘 지냈다. 이야기할 때 균형도 잘 잡고 합리적인 친구였다”며 “운동을 잘했는데, 특히 농구를 좋아해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포용심과 스킨십이 뛰어났다”고 회상했다.

박 시장의 고교 시절 친구로는 대구지방검찰청장을 지낸 신종대 법무법인 청림 고문변호사가 꼽힌다. 차기 금융감독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정은보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표와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역시 박 시장의 대일고 동기다.

대일고 출신은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물론 박태진 JP모건코리아 대표,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역시 두 시장과 동문이다. 전셋값 인상 논란으로 3월 29일 경질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대일고 출신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두 대일고·고려대 출신 정치인이 야당 시장으로서 어떤 시정을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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