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진정한 ‘코로나 영웅’ [이정은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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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지역에 사는 16세 한인 고등학생 TJ 김 군은 파일럿이 꿈입니다. 9살 때부터 해군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틈틈이 인근의 경비행장에서 비행 수업을 받으며 꿈을 키워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역 봉쇄(lockdown) 조치가 이뤄지면서 학교와 모든 스포츠클럽 등이 문을 닫은 것은 지난 3월. 교관과 단 둘이서 야외에서 진행이 가능한 비행은 그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비행수업에 매달리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비행으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상의한 끝에 찾은 것은 자동차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시골 병원에 코로나19 보호 장비와 의료용품을 배달하는 일. TJ군은 의료용품을 기부할 업체와 이를 필요로 하는 시골의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급받은 마스크와 고글, 장갑 같은 물품들을 비행기에 싣고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병원부터 구석구석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그가 붙인 이 활동의 이름은 ‘SOS 작전’.

TJ군은 최근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올해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앞서 미국 대통령 표창장을 받아 백악관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TJ군은 “악천후 때문에 비행기가 제때 뜨지 못해 한밤중에 비행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정말로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십대가 경비행기를 몰 수 있는 미국에서 TJ군의 사례는 다소 특이하긴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이 선정됐다는 점에서 CNN방송의 ‘2020 영웅’의 스토리는 더 와 닿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올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두에게 큰 시련이자 도전이었습니다. 벌써 2000만 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 수만 35만 명에 육박한 미국은 그야말로 참담한 혼란 그 자체였죠. 전쟁 같은 위기상황이었던 만큼 우리 주변에서 남다른 봉사심을 발휘하며 온정을 베푼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영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온 싱가포르의 노점상 운영자들,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교회를 개방해 숙소와 음식을 제공한 미국인 목사 부부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적으로 누적된 피로감과 싸워가며 환자들을 돌봐온 의료진도 우리에게는 모두 영웅입니다. 미국에서 첫 백신 접종이 시작됐던 날,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백신을 맞은 뒤 기자회견에 나선 5명의 조지워싱턴대 병원 의료진들 앞에서 취재진은 모두 예의를 갖추며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백신 없이 코로나19 병상에서 싸워온 이들의 헌신을 인정하고, 이들이 1순위로 백신 접종을 하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독자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2020년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를 선택하겠느냐고. 응답을 보내온 2000여 명의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았던 세 가지 단어는 지치고(exhausting) 길을 잃었고(lost), 혼란스러운(chaotic)이었다고 하네요. 어정쩡한(limbo), 초현실적(surreal)이라는 단어를 꼽은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지옥(fresh hell)’, 악몽(nightmare) 숨막히는(stifling). 부서진 꿈(broken dreams) 잃어버린 해(a year of missing)같은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만큼 모두에게 힘들었던 한 해였습니다.

영웅이 말처럼 거창한가요. 이렇게 전례 없는 팬데믹의 도전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동시에 주변 이웃들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 모두가 올해의 영웅입니다. 벌써 10개월째 정상적인 학교나 유치원 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돌봐온 이 세상의 모든 ‘부모 영웅’들에게도 파이팅을 외칩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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