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비혼 출산…‘정상가족’ 범주 확장해가는 국회

  • 뉴시스
  • 입력 2020년 11월 21일 0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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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가 촉발한 '비혼 출산', 정치권 제도 개선 착수
주거급여 못받는 '20대 미혼청년' 등 제도 사각지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가족' 선입관 탈피 '꿈틀'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이 알려진 뒤 정치권에서는 오래된 ‘정상가족’의 틀을 깨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동안 입법부는 1인 가구의 급증과 비혼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사유리씨의 출산과 임신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화두를 던져줬다”며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인식에 발맞춰 국회에서도 제도 개선을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 배복주 부대표도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이 가족을 기본 단위로 구성돼있어 가족을 구성해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은 여성으로선 그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 한다”며 “사실상 현재의 가족제도, 우리나라의 낮은 인식과 법과 제도, 정책에서 나아가 한국 사회에 총체적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정상가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비혼 출산, 1인 가구, 동성 연인, 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는 입법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혼인을 전제하는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은 다양한 영역에서 사각지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당 청년TF가 지난 19일 개최한 주거급여 간담회에서는 현행법상 ‘20대 미혼 청년’은 자신의 소득이나 자산이 아무리 낮아도 주거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30세 미만 비혼 청년의 경우, 1인가구라 하더라도 부모의 소득 및 재산 기준에 종속돼 주거급여를 받을 수 없다. 정부가 내년부터 미혼청년의 주거급여를 분리해 지급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기존에 주거급여를 수급하던 가정’으로 한정하면서 청년 1인가구가 부모의 재산 기준에 종속되는 것은 여전한 실정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낙연 대표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20대는 개별 가구가 아니라서 주거급여 지급 대상에서 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30대 이하 청년도 개별 가구로 인정하는 법 개정부터 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현재 전용기 의원이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거정책 소외는 비단 복지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임대주택 청약 조건마다 ‘신혼부부 우대’가 걸려있고 다자녀가정일수록 혜택은 커진다. 전세 자금 대출에서도 후순위로 밀린다. 정상가족을 요구하는 혜택들 앞에서 1인가구, 동거가구, 비출산가구는 인정받지 못한다.

가족을 경제공동체로 상정하는 가족관은 ‘자녀와 배우자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을 제한하는 부양의무제에도 담겨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의료급여는 제외된 바 있다.

국회에서 개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4년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같이 사는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려 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부부가 아닌 동거인’도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함께 전세자금을 대출받는 등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일부 기독교계가 ‘동성연인도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거세게 반대해 결국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일본, 독일, 덴마크 등은 일찍이 동거 관계도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박성민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20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가구 형태의 다변화에 우리 사회가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복지체계에서도 4인 가구를 정상의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1인 가구를 고려한 새로운 복지체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9.7%는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국민적 인식 변화가 제도보다 앞선 셈이다. 국회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는 입법과 기존 제도 보완으로 정상가족의 틀을 넓혀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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