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명시 안됐는데…공수처 ‘규칙제정권’ 위헌 소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6일 2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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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 소지가 커 검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수정안에 대한 반응을 이같이 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정안을 전달받은 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 들어갔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오전 대검 간부 회의에서도 위헌 소지 부분이 지적됐고, 윤 총장은 대응책까지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헌법에 ‘규칙제정권’ 명시 안됐는데…수사처 규칙 논란

올 4월 여야 4당이 합의안 패스트트랙 원안 제45조는 ‘수사처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공수처 수정안은 이 조항을 ‘수사처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수사처규칙으로 정한다’고 바꿨다. 대통령령을 수사권규칙으로 바꾼 것이다.

수정안의 다른 조항에도 곳곳에 수사권규칙이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조건을 명시한 제8조 1항과 제10조 1항에는 각각 ‘수사처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새로 들어갔다.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수사처규칙으로 정한 기간과 방법으로 수사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는 제24조 4항은 아예 신설됐다.

대한민국 헌법은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4곳만을 명시하고 있다. 그 외 기관은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을 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헌법상 규칙제정권을 부여받지 않은 기관인 공수처가 규칙을 만드는 권한을 갖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공수처장이 검사와 수사관의 자격, 다른 수사기관이 통보해 온 사건의 수사 여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여야 ‘4+1’ 협의체는 “자율적인 규칙제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각종 세부 사항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정할 수 있게 하면서 공수처를 견제할 방안을 없앴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초헌법적 기구가 만들어지는 조항이 포함됐는데 누가 언제 포함시켰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혹평까지 제기된다.

● 공수처 검사 조건은 ‘검찰청법 위반’ 논란

법조계에선 공수처 검사의 조건에 대해선 위헌 소지뿐 아니라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청법 제29조는 검사의 임명자격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사람’,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명시한다. 그런데 공수처법 수정안은 조사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하면 검사로 임용할 수 있게 하면서 법령이 정한 검사를 임용할 수 있는 자격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정부 여당이 특정 성향을 지닌 재야 인물들을 공수처 검사로 임용한 뒤 정치적 수사에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전혀 못 하고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을 죽여야 할 때나 수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단호하게 선거법 처리와 검찰개혁, 민생법안 처리에 나서겠다”고 반박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강성휘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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