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밀착하는 러시아와 달리 中, 북핵문제에 조용한 까닭은[우아한 세미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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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에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전통 우방국가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에서는 비핵화와 경제협력 등 양국 간 관심사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노이 회담 직후 발빠르게 움직여 온 러시아에 비해 북한의 또 다른 전통우방국가 중국은 좀처럼 이렇다 할 목소리나 움직임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는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 유관 각국, 특히 북-미가 서로 마주 보고 가고 대화를 강화하기를 바란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올해 1월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지난해 이후 네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양국이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힌 것과 상당히 다른 상황입니다.

1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기념사진을 담은 앨범을 보고 있다. 중국 CCTV 화면 캡처
1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기념사진을 담은 앨범을 보고 있다. 중국 CCTV 화면 캡처

중국은 요즘 왜 북한 문제에 조용한 것일까요. 25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이종화)가 통일부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국제 세미나에서는 이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됐습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및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구축’이라는 주제로 하노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문제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살펴보는 자리였지만 중국의 행보를 놓고 발표자와 토론자, 청중의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발표에 나선 고려대 아연의 이정남 교수는 “중국은 현재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옵저버, 관찰자처럼 행동하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중국은 ‘못’나서는 것이 아니라 ‘안’ 나서는 것이며 시 주석이 국내외적 난제 속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시 주석의 중국은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갈등 등을 위시한 전략적 경쟁국면을 경험하면서 일대일로 정책 등 이른바 ‘중국몽’을 실현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크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25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의 ‘하노이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세션 라운드테이블에서 
참가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25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의 ‘하노이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세션 라운드테이블에서 참가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실제로 중국은 다음 주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막바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다음달 말 또는 6월 초 양국 정상이 무역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을 목표로 고위급 대면 협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25일부터 베이징에서는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개최됐습니다. ‘함께 만드는 일대일로, 아름다운 미래를 열다’라는 주제로 27일까지 진행된 정상포럼에는 150여 개 국가와 90개 국제기구 고위급 인사 5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날 세미나 1부 사회를 본 뒤 중국 현지에 다녀온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29일 “36개국의 정상이 참여한 행사를 진행하느라 중국 전역이 비상이었고, 북한 등 다른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세미나에서 “중국은 북한 문제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준수하는 동시에 북한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해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으며 이점에서 김정은도 트럼프도 믿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시 주석이 세 차례나 김정은을 만났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중국 배후론’ 공격을 당하고서도 종전선언 당사국에서도 제외되는 등 제 몫을 챙기지 못한 과거에 대한 교훈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25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관점’을 주제로 한 특별세션에서 참가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응히엠 투안 헝 베트남 국제경제정치연구소 박사,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 왕준쉥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손기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김진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영준 국방대 교수, 김흥규 아주대 교수.
25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관점’을 주제로 한 특별세션에서 참가자들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응히엠 투안 헝 베트남 국제경제정치연구소 박사,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 왕준쉥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손기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김진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영준 국방대 교수, 김흥규 아주대 교수.

이에 대해 중국 사회과학원 왕준쉥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요한 국가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충분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미-북 간의 직접 대화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양국의 상호 신뢰도가 무척 낮은 상황에서 탑다운 방색의 해결을 추구했던 점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쌍중단-쌍궤병행을 지지하며 한국과 중국이 이에 중간자로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습니다.

토론에 나선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왕준쉥 교수에게 “중국이 진실된 마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점이 의문스럽다. 사실상 이와 같은 상황을 ‘활용(utilizing)’하는 것에 가깝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왕 교수는 중국 정부의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 지금 상황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비핵화 요구로 인해 북한이 중국에 등을 돌리는 상황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딜레마 같은 중국의 처지를 설명했습니다.

양소희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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