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뉴욕서 팔리는 北소주 美대북제재에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6일 03시 00분


[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플러싱의 주류상점 ‘라이저리커’ 매장에 진열된 북한산 평양소주. 병당 가격이 4.69달러(약 5300원)라고 적혀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플러싱의 주류상점 ‘라이저리커’ 매장에 진열된 북한산 평양소주. 병당 가격이 4.69달러(약 5300원)라고 적혀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북한에서도 물이 좋기로 유명한 남평양의 양덕과 명산, 함경남도 요덕의 승리 지역에 양조장이 있습니다. 옥수수(75%), 쌀(23%), 찹쌀(2%)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온라인 주류상점 ‘라이저리커’는 14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평양소주를 병당 4.69달러(약 5300원)에 미국 전역에 판매한다며 이렇게 홍보했다. 홈페이지엔 평양소주의 원산지를 ‘코리아’로 적고, 상품 세부 설명에만 북한산이라고 썼다.

동아일보와 채널A 취재팀은 이날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라이저리커를 찾았다. 한국 주류 코너엔 익숙한 브랜드의 한국산 소주와 북한산 평양소주가 함께 진열돼 있었다. 상표에는 ‘Product of D. P. R. of Korea’(북한산)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뉴저지에 주소지를 둔 ‘고려평양트레이딩’이 수입상으로 표기돼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이 소주가 평양에서 왔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마이클 크리스토퍼슨 씨는 “깜짝 놀랐다. 북한 상품이 어떻게 미국에서 팔리고 있느냐”고 말했다. 한국 동포들조차 중국이나 미국에서 만들어 상표만 ‘평양’을 붙인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알코올 도수 23도의 평양소주 가격은 병당 4.69달러. 2, 3달러대의 한국산 인기 제품에 비해 30% 이상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병과 상표 디자인이 조악한 데다 용량(375mL)도 병마다 제각각이었다. 라이저리커의 직원 애덤 송 씨는 “양이 균일하지 않은 것을 보면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서 미국까지 오는지 완전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평양소주가 미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08년. 당시 맨해튼에 주소지를 둔 ‘코리아평양트레이딩’이라는 수입업체가 미국에서 처음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맛과 품질이 떨어져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수입상이 미 정부의 수사를 받으며 판매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에 24병 정도 팔린다니 거의 소비자들의 관심 밖인 셈이다. 가장 잘 팔리는 한국산 브랜드의 400분의 1 수준이다.

최근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미 정부의 대북제재까지 강화돼 공식 수입길이 막혔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상무부가 밝힌 미국과 북한의 교역은 8월까지 6개월간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미국과 교역을 하려면 북한과 교역을 끊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인터넷과 뉴욕 한복판에서 평양소주가 버젓이 팔리자 미국의 대북제재에 구멍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도매상과 판매점은 수입 중단 전에 들여온 재고를 판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에릭 라이저 라이저리커 사장은 “평양소주 20상자(상자당 24병)를 미리 구매해 판매하고 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수입이 재개되겠지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라이저리커에 평양소주를 공급한 도매상의 한 관계자는 “과거 수입된 재고를 공급한 것일 뿐”이라며 “수입상은 연락이 끊겨 추가 공급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진열대의 얼마 남지 않은 평양소주는 국제사회와 세계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는 북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북한#뉴욕#소주#대북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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