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시대에도 없던 철도금지령… 2월 풀릴지도 미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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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김정은 집권 6년]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그동안 북한 주민의 삶과 민심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김정은이 지금까지처럼 계속 핵무기를 갖기 위해 질주하더라도 민심이 이반될 가능성은 없을까.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선 먼저 김정은 치하에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철도 대란이 드러낸 북한의 경제 파탄


 
북한 장마당(시장)이 크지 않은 농촌 마을까지 확대되면서 유통과 소규모 개인 수공업이 살아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진은 상인과 소비자로 붐비는 북한 한 시골의 장마당 모습. 동아일보DB
북한 장마당(시장)이 크지 않은 농촌 마을까지 확대되면서 유통과 소규모 개인 수공업이 살아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진은 상인과 소비자로 붐비는 북한 한 시골의 장마당 모습. 동아일보DB
북한에서 철도는 ‘나라의 동맥’으로 불리는 매우 중요한 경제 분야다. 경제 회생의 선결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전력 수급 상황도 열차 운행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북한 집권자들의 신년사에는 해마다 ‘철도 운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업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올해 신년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절망적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국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 2월 초까지 주민의 열차 이용을 금지했다. 전력 사정이 좀 나아지면 다시 원상 복귀한다고 하지만 몇 달 동안 교통대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정일 시대에는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주민 열차 탑승 금지령이 내려진 적은 없었다.

 철도가 마비된 내막도 기가 막힌다. 북한은 전기 사정 악화로 겨울엔 전기기관차 대신 중국에서 수입한 중고 내연기관차 4대를 이용해 지금까지 열차를 운행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북부지역 수해 복구 작업에 내연기관차를 모두 투입했다가 2대는 충돌로 전복돼 완파됐다. 나머지 2대는 청진철도공장에서 정비를 받고 있지만 중국에서 부품 조달이 어려워 한동안 운행이 불가능하다. 내연기관차 4대가 멈추자 철도 전체가 마비돼버린 것이다. 지독한 경제난에 허우적대는 북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철도만이 아니다. 북한을 지탱할 수 있는 중요 기간산업 중 제대로 가동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수출용 석탄과 광물을 생산하는 일부 탄광과 광산, 피복 공장 정도만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산업 재건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특히 대북제재 여파로 외화 수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임수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지난해 11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21호로 올해 북한의 외화 수급은 7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며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의 외환보유액이 4년 안에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과시성 건설사업은 중단이 없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가 무용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4월까지 여명거리 건설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해외에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들과 근로자들은 번 돈의 90% 가까이를 착취당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해외 파견 일꾼들이 지난해 대거 한국으로 온 것이 이런 사정 때문이다.

환율과 쌀값 안정의 불가사의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경제 파탄과 별개로 불가사의한 현상이 하나 눈에 띈다. 과거 5년 동안 너무나 안정적인 쌀값과 환율이다. 이 지표는 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판단하는 지표이다.

 김정은 집권 1년 차에 1달러에 8100원 하던 환율은 4년이 지난 지금도 8100원에 머물러 있다. 이 기간 수백 원 차이로 환율이 요동친 적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8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쌀값도 마찬가지다. 2013년 1월 1kg에 5600원이던 쌀값은 올해 1월 4500원에 머물러 있다. 쌀값은 6000원을 넘어선 일이 거의 없다. 위안화 환율이나 잡곡 가격도 마찬가지로 안정돼 있다.

 최근 탈북한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현재 북한에선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의 차이가 쌀밥을 먹느냐, 옥수수밥을 먹느냐의 차이일 뿐 굶주리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경제는 파탄이 나서 회생 가능성이 낮은데 환율과 쌀값은 선진국보다 오히려 더 안정된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 사상 최강이라는 대북 제재가 시작됐지만 북한 내부의 환율과 쌀값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무슨 비밀이 숨겨진 것일까. 김정은이 단행한 여러 개혁 조치 중에 농업개혁은 어느 정도 효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집체 경작 방식에서 가족 단위 경작 방식으로 바뀌면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 내부 식량가격을 안정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이 사회주의 경제 운영을 포기하고 시장 통제를 거의 하지 않아 장마당이 늘어나고 개인 간 상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간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 개인들의 상거래에 의존한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일성 배지를 뗀 김정은


 새해 첫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의 가슴에는 ‘초상휘장’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김정일 배지가 달려 있지 않았다. 김일성, 김정일 시신을 참배하면서 배지를 달지 않은 것은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불경죄다. 과거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배지 없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뿐이다.

 또 김정일은 자기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계자론’ 등 많은 사상 이론을 만들어 주민들을 세뇌했다. 김정은 시대엔 아직 이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가 아버지 시대의 우상화와 주민에 대한 사상적 세뇌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 대신 김정은은 강력한 공포통치로 사소한 반항의 싹도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있다. 김정일이 사상과 이념, 상징적 행위에 큰 관심을 두었다면 김정은은 실리를 챙기는 데 관심이 크다. 이런 김정은에게 2017년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의 해이다.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경제난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김정일과 남북관계에서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던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반면에 2008년 이후 남북 관계가 8년 넘게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은 문을 닫고 후계 작업에 집중하려던 김정일, 집권 후 안방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던 김정은, 북한에 돈을 퍼주고 싶지 않은 보수 정권의 의도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올해 한국에서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기회가 열렸을 때 빗장을 열고 그것을 잡을지는 김정은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일#김정은#철도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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