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은 개혁 원하는데… 대선 주판알만 굴리는 정치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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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표결 D-1]탄핵 이후 ‘국가 대혼란’ 우려

 “탄핵 이후는 볼케이노(화산)다.”

 7일 더불어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 이후 정국에 대한 우려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결되면 가결되는 대로, 부결되면 부결되는 대로 거대한 정치적 ‘폭발’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나라가 격랑에 휩싸일지 모르는데도 방향타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가늠조차 할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일각에서는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박 대통령 즉각 사임을 계속 요구하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권은 ‘찬탄’(탄핵 찬성) 세력 대 ‘반탄’(탄핵 반대) 세력 간의 당내 주도권 싸움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가 ‘최순실 정국’의 일단락이 아니라 또 다른 정치적 미궁으로 빠져드는 초대장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文, “박 대통령 형사처벌해야”

 민주당을 비롯한 야 3당은 ‘탄핵 처리 이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날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 처리해도 헌법재판소 결정이 남아 있다”며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권의 에너지 상당 부분을 촛불 민심에 기대야 할지 모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노력으로 만약 헌재가 탄핵을 인용(認容)한다면 곧바로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나마 헌재 심판 절차를 기다리겠다고 정치권이 합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정문 앞 촛불집회에서 탄핵안 부결 시 정계 은퇴 주장에 대해 “새누리당의 ‘문재인 죽이기’가 시작된 것 같다. 문재인이 그리 무서운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헌법을 파괴하고 많은 권력형 범죄를 저지르고 그러면서도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범죄자 박 대통령이 하루라도 더 재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반헌법적인 것”이라며 “새누리당은 하루빨리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퇴진시키고, 형사처벌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국민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사처벌’ 얘기는 처음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상임대표도 퇴진 요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이고,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대통령”이라며 “법정 최고형으로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치권 일각에서는 결국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킨 뒤부터 다른 일은 손댈 여지도 없이 조기 대선 국면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한 여당은 물론이고 집권 기회가 커진 야권 내부의 대선 주자 진영 간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촛불집회로 표출된 민심은 ‘박근혜 아웃(out)’이지만 숨겨진 민심은 ‘정치 아웃’”이라며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경선도 대선도) 다 빨리 해서 끝내 버리자는 걸 텐데, 힘센 사람이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 개혁 욕구 흡수할 리더십 있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탄핵 이후’ 상황이 1960년 4·19혁명이나 1987년 6·29선언 뒤끝과 비슷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각종 정치·사회·경제적 개혁 내지 변화 욕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며 일시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선 주자들도 이런 ‘개혁 욕구’를 직접 이끌거나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뿌리 깊은 적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검찰, 재벌 개혁 등을 예로 들었다. 또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를 질타하며 전선을 더 넓히는 방향도 고려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최근 발표한 청와대·검찰·재벌 개혁 방안을 공론화해 나갈 계획이고, 안희정 충남지사도 ‘사회 대개조 요구’를 시민들과 함께 구체화하는 행보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 이후 들어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나 조기 대선에 집중할 가능성이 큰 여야가 이런 개혁 이슈나 특히 개헌 논의를 제도적 틀 안으로 끌어들여 제대로 논의할 역량이 있는지 회의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만한 정치인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발등의 불인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시간이 약’이라는 태도가 전부라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권한대행 체제나 정치권, 어느 한쪽이 주도하기보다는 협치(協治)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 되겠지만 국가 미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얘기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여야와 황 총리가 공석인 법무부 장관 임명이나 안보·경제 같은 주요 현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책임지는 협의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경제정책 분야만이라도 여야가 합의해 ‘경제 컨트롤 타워’를 세워야 한다”며 “이를 통해 시급한 거시정책 대응과 위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촛불 민심이 어디로 어떻게 폭발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여야 모두 입을 모은다.

민동용 mindy@donga.com·한상준 기자
#변화#개혁#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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