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前국회의장 “與 모두 ‘내 목을 치라’는 자세 보여야… 죽어야 살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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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여권 원로가 여당에게]김형오 前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야, 종교, 사회계를 하나로 묶는 비상시국국민대표회의를 만들어 국정 혼란 사태를 타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야, 종교, 사회계를 하나로 묶는 비상시국국민대표회의를 만들어 국정 혼란 사태를 타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나라가 망하거나 조직이 망가질 때 드러나는 현상이 내부의 리더십 붕괴로 인한 ‘지리멸렬’이다. 지금 집권 여당은 망하는 조직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의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서 여권의 공멸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새누리당은 지도부 사퇴를 놓고 걷잡을 수 없는 내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당 출신인 김 전 의장은 이정현 대표 등 친박(친박근혜) 지도부를 향해 “‘대통령을 잘못 모셨다’고 하며 벌써 사표를 냈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비박(비박근혜) 진영에도 “이 지경까지 이른 데 여당 의원으로서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에도 국민의 반발이 거세다.

 “두 번째 사과가 아주 잘못 됐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국정 수행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최순실 씨 관련 행적도 문제지만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까지 의심하는 상황에서 뭘 더 하려는 것인가. 그나마 박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기대를 건다면 애국심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겠다는 자세가 공인으로서 그 애국심을 발휘하는 길이다.”

 ―정치권에서도 대통령 하야 주장이 나오는데….

 “정치인이 하야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다. 대안 세력도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하야로 겪게 될 나라의 혼란을 어쩔 것인가.”

 ―여당은 4일 의원총회에서 수습책을 찾지 못하고 주류-비주류 간 감정의 골만 깊어진 양상이다.

 “지금 여당은 망하는 조직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리더십은 붕괴됐고 공통의 목표를 상실했다. 그런데도 항상 네 탓만 하고 있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한동안 몸담았던 정당인데 새누리당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자괴감이 들고 참 비참하다.”(김 전 의장은 4·13공천을 앞둔 3월 초 공천 논란이 빚어지자 실망해 탈당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는 사퇴해야 하나.

 “제대로 된 지도부라면 벌써 나갔어야 한다. ‘선(先)수습 후(後)사퇴’라는데 친박이 말하는 사태 수습이 뭔지도 모르겠다. 야당에서는 이미 현 지도부와 상대도 안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을 위한 헌신과 자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이 대표가 빨리 직을 내려놓는 게 대통령을 위한 길이다.”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 대선 주자 5명이 ‘재창당’을 요구했는데….

 “대선 주자라면 불난 집에 뛰어들어 생명을 구하는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하는데 불 끄라고 밖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다. 갈가리 찢어진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지도부 사퇴만 운운할 때가 아니다. (김 전 대표는) 몇 달 전까지 지도부였고, (시도) 지사들도 새누리당 아니면 어떻게 지사가 됐겠는가.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당의 멤버로서 엎드려서 내 목을 치라는 심정으로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친박-비박은 이 시국에도 왜 싸우고 있다고 보나.

 “친박이든 비박이든 진영에만 안주하면 정치생명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 같다. 당도 안 보이고, 국가도 안 보이는 것이다. 당이 침몰할 판에 당권을 놓고 옥신각신하는데 어리석은 짓이다. ‘천막당사’ 시절처럼 국민이 한 대 때리면 두 대 맞겠다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죽어야 산다.”

 ―여권 전반의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서 국정 공백의 우려가 크다.


 “대통령이 사실상 ‘식물 대통령’인 상황에서 국정 마비가 오래 지속되면 엄청난 재앙이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은 대통령과 국회뿐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국회가 대체 세력이 돼야 한다. 야당이 ‘반(半)시체’나 다름없는 대통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압박만 하면 국가적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국회가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여소야대 국회에선 야당이 국회를 주도해 국민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국회의장이 나서 여야, 재야·시민사회·종교 원로와 함께 ‘비상시국국민대표회의’를 구성해 국회가 통치 행위의 일부를 책임져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과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야 지도자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모습을 보여 달라.”

 ―당장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문제의 해법은….

 “아까운 사람이다. 어려운 시국에 총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데 안타깝다. 청와대가 민주주의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면서 낙마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김 후보자가 대통령과 야당에 소기의 역할을 해서 국정의 얽혀 있는 실타래를 푸는 데 기여하고 명예롭게 퇴진할 길이 열리면 좋겠다.”

 

:: 김형오 전 국회의장(69) ::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4∼18대 국회의원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부산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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