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외교관 가족 망명…김정은 核공포통치 균열 커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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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서열 2위인 태영호 공사가 평양 복귀를 앞두고 최근 부인,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다.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주이집트 대사 이후 최고위급 북 외교관의 망명이다. 태 공사와 부인이 항일 빨치산 집안 출신인 ‘백두산 줄기’인지에 대해선 설이 엇갈리나 외교관 중에서도 드물게 가족과 함께 해외에 장기 체류한 것을 보면 최상위 특권층인 것은 분명하다.

태 공사는 망명 동기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혔다고 통일부가 전했다. 최근 북의 유럽 내 노동당 자금총책이 우리 돈으로 4000억 원을 갖고 잠적한 것과 관련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이 어떻게 유럽에 돈을 숨기고 사치품을 조달했는지를 비롯해 북의 유럽 내 자금 흐름을 꿰뚫고 있는 자금총책을 잡기 위해 북 외교공관마다 혈안이 돼 있다. 태 공사는 그의 망명을 못 막고 귀국하면 문책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집권 4년간 노동당 간부 130여 명이 처형을 당할 만큼 공포통치는 권력 엘리트들을 옥죄는 통치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포에 떠는 이들 당 간부들을 향해 “통일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반(反)인권적 전체주의 체제를 지탱해 온 기득권 집단 가운데 양심과 인간성이 살아있는 엘리트층을 분리해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협력하거나 최소한 김정은 체제 수호에 목숨 걸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낸 신(新)대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태 공사의 망명으로 김정은 체제가 당장 붕괴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임계치에 이르면 엘리트층은 물론이고 해외 근무 근로자까지 탈북 도미노가 벌어질 수 있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폭압적으로 주민을 억누른다고 해도 일단 민심이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소련이 핵이 없어 무너진 것이 아니다.

북은 2013년 원자로를 재가동한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새로 생산했다고 17일 밝혔다. 우라늄 농축시설에서도 핵무기에 사용될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주장했고, 5차 핵실험도 예고했다. 정부는 탈북 도미노와 김정은의 ‘핵 도박’ 모두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대사관#태영호#태영호 망명#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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