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갑갑한 공기, 답답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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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의 전쟁: 정부 대책 발표]
낡은 화력발전소 폐쇄 등 재탕… “10년내 유럽수준” 구호만 되풀이
경유값 인상 제외… 근본대책 미흡

3일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시민이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지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일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시민이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지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경유차에 지원되던 각종 혜택이 앞으로 폐지되고 이 차량들의 질소산화물(NOx) 배출 인증 강화 등 규제가 강화된다. 전기차 같은 친환경 차량의 보급 확대를 위해 2018년까지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에 주유소의 25% 수준인 3100기의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또 미세먼지 발생량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온 고기구이 식당 500여 곳부터 저감시설이 지원된다.

정부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기상청 등 관계 부처 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수도권 미세먼지 농도 저감 목표치(m³당 20μg) 달성 시한을 2021년으로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기고, 2026년까지 미세먼지 농도를 유럽 주요 도시 수준(m³당 18μg)으로 낮추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도권 내 노후 차량 운행제한지역(LEZ)을 확대한다. 또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동시에 24시간 지속되면 차량부제를 실시하고, 모든 노선 경유 버스는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단계적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유가보조금 지원 대상을 경유 버스와 액화석유가스(LPG) 버스에서 CNG 버스로 확대한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를 폐쇄하거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장 등 사업장에 적용되는 대기오염총량제는 수도권 외에 충청도 등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미세먼지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현재 152개인 초미세먼지(PM2.5) 측정망을 2018년까지 287개로 늘리고, 농도가 갑자기 높아질 때를 대비해 한중 간 협력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최대 쟁점이었던 경유값 인상안은 이날 대책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2018년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일몰되는 시점에 경유가격을 조정하기로 하고 4개 국책연구기관의 공동연구 및 공청회 등을 하기로 했다. 미세먼지 대책의 시행을 위해서는 ‘미세먼지 대책 이행 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내용의 상당수는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제2차 수도권대기환경 개선 계획을 보강 확대하는 것인 데다 예산 확보 방안과 정책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것이 많아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특단의 대책’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내고 “적당한 선에서 봉합하는 수준에 그친 재탕 수준의 졸속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임현석 기자


▼ “낡은 경유차 3년내 조기폐차”… 예산 등 이행방안은 빠져 ▼


3일 발표된 정부의 미세먼지 종합대책에서 범부처 차원의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쳤다고 볼 만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쟁점이 됐던 경유값 인상안은 제외됐고, 나머지 내용들은 기존에 시행돼 오거나 계획했던 것을 ‘강화’ 혹은 ‘확대’ 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런 정책으로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재탕 백화점’ 대책 효과 있나

정부 종합대책의 상당 부분은 경유차 운행을 제한하거나 배기가스를 줄이는 데 맞춰져 있다. △2005년 이전 노후 경유차의 조기폐차사업 2019년까지 완료 △모든 노선의 경유버스를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대체 △질소산화물(NOx) 인증기준에 실험실 이외 실제 도로 운행 기준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를 폐기 혹은 대체하고 저감시설을 지원하는 데 정부가 투자하겠다고 밝힌 예산은 2조5000억∼3조 원 수준. 신규 석탄발전소 9기에는 영흥 화력발전소 수준의 강화된 배출기준이 적용된다. 현재 5기가 건설 공정 10% 미만 단계이고, 나머지 4기는 아예 착공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3조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계획에 없다.

게다가 문제는 상당 부분이 기존에 시범사업 등의 명목으로 이미 시행돼온 정책이라는 것.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30%를 전기차 등 친환경차(총 150만 대)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은 기존 목표였던 20%를 확대하는 수준에서 조정됐다.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지역(LEZ) 운영은 2차 수도권대기환경개선 기본계획에 이미 포함됐지만 예산 문제와 지방자치단체 반발 등의 이유로 시행에 진전을 보지 못했던 정책이다. 생활 주변의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는 방안은 건설공사장의 ‘자발적 협약’ 및 현장 관리점검 강화라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정책들도 적잖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심지어 △2조 원 규모의 전력 신산업 펀드 조성 △이산화탄소(CO2) 포집 및 저장 핵심기술 개발 △스마트 도시사업 확대 등 미세먼지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신산업 육성’ 정책까지 나열했다.
○ 예산, 로드맵, 대안 없는 3무(無) 정책

계획에 따라 초미세먼지 측정망을 두 배 가까이 늘리고 전기차 충전인프라를 주유소의 25% 수준까지 확충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지만 역시 예산에 대한 설명은 빠졌다. 서민증세 논란에 갇히면서 예산 투입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덩달아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신차 판매의 약 30%(48만 대)를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늘린다고 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 일부 인센티브를 강화한다고 이 같은 목표가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또 LEZ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차량부제 실시안은 지자체와의 협의가 필요해 기존 계획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 측은 “일부 지자체는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경기도는 경유차량 운행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 제정 요구에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같은 대책은 벌써 벽에 가로막혔다.

최대 3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석탄화력발전소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히면서도 이에 대해 전기세 인상이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증설계획 등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 수급 대안이 나오지 않은 것도 문제다.

김상협 KAIST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는 “관계 부처 간 극한 이기주의를 조정할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이번 대책에서 장기적인 전망도 함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 핵심인 경유값 조정안은 어디로

이런 문제들은 이번 미세먼지 대책의 핵심 쟁점이었던 경유값 인상안이 제외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정치권의 논리에 밀려 정부가 의견을 모았던 핵심 정책을 빼놓은 결과 기존 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깨끗한 환경을 위해 어디까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여론 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정치권의 논리에 밀려 너무 쉽게 정책을 접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일단 4개 국책연구기관의 공동 연구 등을 통해 검토는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가격정책이 경유차 규제의 핵심이라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연구 용역이 시작되면 논의가 진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계 부처 간 이견을 노출한 상태에서 협의 절차를 건너뛴 채 갑자기 이뤄진 결정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여당이 “경유값 인상에 반대한다”며 당정협의를 연 지 하루 만에 행정부가 전격적인 발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기획재정부가 2주 넘게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경유에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논의가 돼 오던 대책이 졸지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임현석 기자
#미세먼지#화력발전소#경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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