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훈]관권선거 논란… 별일 아니라는 기재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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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경제부
이상훈·경제부
“기획재정부 차관이 대통령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통상적인 업무 수행입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거죠.”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동행해 정부 예산사업 현장을 찾아 논란이 일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기재부가 내놓은 해명이다. 기재부는 또 “대통령 행사엔 계속 기재부 차관이 참석해 왔다. 현장 중심 행정을 위한 일환”이라는 참고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기재부 해명과 실제 상황에는 차이가 있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기재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나 현장방문에 기재부 차관이 계속 참석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에 동행했는지는 확인을 거부했다. 올 1월 대통령 업무보고 정도를 제외하면 기재부 차관이 대통령 행사에 참석했다고 알려진 사례는 찾기 어렵다. 또 기재부는 현장방문을 13차례나 했다고 밝혔지만, 10일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복권위원회 봉사활동, 자유무역협정(FTA) 보완대책 현장방문 등은 모두 대통령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정이었다. 대구에서의 행보도 석연찮다. 대통령 행사 뒤 송 차관이 찾은 현장이 ‘진박(眞朴) 후보’들이 ‘비박(非朴)’이자 현역인 유승민(대구 동을), 류성걸 의원(대구 동갑)에게 도전장을 내민 곳들이다. 알고도 방문했다면 사실상의 선거 개입이고, 모르고 찾았다면 차관으로서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기재부 2차관은 375조 원의 정부 예산 편성 및 집행을 총괄하는 엄중한 자리다. 예산 1억 원을 어떻게 배정하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의 지도가 달라지고 지역민의 표심이 들썩인다. 매년 예산 편성 시즌만 되면 예산실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갑(甲) 중의 갑’이 된다.

그런 막강한 위치에 있는 기재부 2차관이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행사에 동행하고, 예산 집행을 홍보하고 나선다면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고, 관권 선거”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의심의 눈초리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당국자들이 정치적으로 의심받을 행동을 삼가는 게 우선이다. 총선이 한 달밖에 안 남은 지금은 오이밭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신발 끈을 묶어선 안 될 때다.

이상훈·경제부 january@donga.com
#관권선거#기재부#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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