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여야 ‘저승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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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D-32]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4·13총선의 공천 칼자루를 쥔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71)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76), 국민의당 전윤철 공천관리위원장(77) 등 백전노장 3인방의 ‘무한질주’에 여의도가 떨고 있다. 이들의 손끝에 향후 4년간 대한민국 국회의 미래가 달렸다. ‘최악의 19대 국회 청산’이란 시대적 과제를 떠안은 한국 정치의 저승사자들이다.

이 위원장은 김무성 대표와의 충돌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일각에선 공천 내전 상황에서 중심을 잡기보다 계파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대표는 야당의 DNA를 송두리째 바꾸겠다고 나서며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여권은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전 위원장은 난파 위기에 놓인 ‘안철수호’의 갑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 “일관성이 밥 먹여주나”… 콕콕 강수 두는 ‘차르’ ▼


“대안 있으면 내놔 보라고 해.”

더불어민주당이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현역 의원 5명의 공천 배제를 발표한 10일 오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 주변에서 “언론이 ‘친노(친노무현) 핵심은 못 건드리고 변죽만 두드린다’고 할지 모른다”고 얘기하자 던진 말이었다.

차르


당에 온 뒤 김 대표는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청산과 운동권 정당문화 극복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문재인 전 대표 시절의 ‘의원 평가 하위 20% 컷오프(공천 배제)’에 더해 추가 정밀조사를 통한 2차 컷오프 추진을 밝혔다. 당 안팎에선 이를 친노와 86그룹(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현역 의원 물갈이용으로 해석했다. 그랬기에 10일, 11일 발표한 두 차례의 2차 컷오프 내용은 충분치 않다는 여론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런 의견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김 대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동안 김 대표 발언을 다시 읽어 봐라. 공천에 대해서는 언제나 당선 가능성을 가장 강조한다고 했다.” 11일 당 관계자가 한 얘기다. 그는 “김 대표는 ‘대체할 자원이 있어야 대체할 것 아니냐. 야당의 인적자원은 풍부하지 못하다’고 말해 왔다”고 했다. 김 대표는 실제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당선 가능성이 1차적 과제다”, “물갈이는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원을 공천) 배제만 하고 대체할 사람이 없으면 선거구 하나를 공짜로 넘겨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에겐 물갈이라는 명분보다 총선 승리라는 실리가 앞선다. 이념보다 실용을 강조하는 김 대표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관성이 무슨 밥 먹여 주는 줄 아느냐”, “이 당의 정체성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라”라며 더민주당의 아픈 데를 콕콕 찌른다. 김 대표가 취임한 뒤 당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거침없다’는 표현이다. 말과 행동 모두 그렇다. 김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솔직히 얘기하는 게 좋다. 옛날에 대통령을 모실 적에도 직설화법으로 얘기했지 간접적으로 돌려 얘기한 적 없다”고 했다. 그동안 보지 못하던 유형의 정치인이 여의도에 등장한 셈이다. “누가 얼굴마담 하러 온 줄 아느냐”며 일갈했던 김 대표가 점점 ‘차르(황제)’가 되어 간다.

알파고

더민주당은 1일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수정을 요구하며 시작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무제한 토론)를 멈췄다. 김 대표가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4·13총선 패배하면 원내대표가 책임질 거냐”며 사실상 중단을 지시했다. 김 대표를 향한 야당 적극 지지층의 반발과 비난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상에서 거세게 일었다.

그 다음 날 오전 김 대표는 돌연 야권 통합을 제안했다. 필리버스터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김 대표의 예상치 못한 한 수에 국민의당은 우왕좌왕하다 파국에 직면하고 있다. “어…, 어…” 하다 국면은 완전히 바뀌었다. 비슷한 장면을 우리는 10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제2국에서 목격했다. 끝내기에서 알파고의 한 수에 프로 9단인 방송 해설가는 “분명한 패착”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알파고는 승부처에서 귀신과 같은 반전 실력을 보이며 승리했다.

김 대표도 마치 알파고와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더민주당 내에서는 그의 야권 통합 제안 ‘한 수’를 보고 “김 대표는 정치 9단 DJ(김대중 전 대통령), YS(김영삼 전 대통령),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넘어서는 정치 10단 같다”는 탄성이 나왔다. 변칙과 실수처럼 보인 알파고의 한 수가 수천만 번의 연산과 학습의 결과였듯 김 대표의 ‘한 수’도 치밀한 계산에서 던진 회심의 수였다. 야권 통합 제안을 하기 직전 열린 비공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회의에서 김 대표는 제안의 배경과 전망을 얘기했다고 한다. 한 비대위원은 “김 대표는 이 제안으로 국민의당은 풍비박산 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김 대표의 ‘뜻대로’ 11일 국민의당은 당이 갈라질 위기에 놓였다.

금수저

김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그의 조부 가인 김병로 선생(1887∼1964)이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고, 청년 시절부터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해공 신익희 선생 등과 교유하며 한국 야당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김 대표는 1963년 가인이 민정당, 국민의당 창당을 잇달아 주도하며 야권 통합과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에 주력할 때 그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당대의 정치인들이 가인의 집을 드나들며 정국을 구상했고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정치를 배웠다. 김 대표가 “나도 선거를 50년 동안 내 나름대로 분석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원이 거기에 있다.

김 대표는 데이터를 신봉한다. 더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할 때 여론조사 전문가로 야권에 알려진 김헌태 전 사회여론연구소장을 부른 것도 그였다. 한 당직자는 “김 대표는 그동안 당에서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듯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 전 소장을 정세분석실장으로도 앉힌 뒤 공천을 위한 사전 여론조사 작업을 그에게 모두 맡겼다. 그 결과를 토대로 2차 컷오프가 이뤄졌다.

그러나 김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여론조사만 전문적으로 3년을 연구했지만 내가 믿는 것은 감(感)이오. 내 감에서 틀린 적은 1988년 총선 때 관악 선거밖에 없어요.” 1988년 총선에서 김 대표는 민정당 후보로 나섰지만 평민당 이해찬 후보에게 졌다. 그의 감에 따르면 이번 4·13총선에서 야당은 비관적이지 않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이길 자신 있으니 비관하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김 대표의 감은 어쩌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정치는 비합리적이다. 야권에서는 김 대표를 국민의당 김한길 전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둘 다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으고 치밀하게 계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김 전 위원장은 2013년 민주당(더민주당 전신) 대표가 되고 난 뒤 이른바 ‘친노 청산’을 착수하지 못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환경적 요인이 컸지만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이것저것 변수를 꼼꼼히 따지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 있다. 반면 김 대표의 결정은 비합리적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김 대표는 한국 정치의 금수저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않고 과감히 승부를 걸 수 있다”고 해석했다.

어젠다


8일 끝날 것이라던 더민주당 2차 컷오프(공천 배제)는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 이르면 13일 밤 혹은 14일 오전에야 마지막 공천 배제 대상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친노 패권주의와 운동권 정당문화 극복’이 총선용으로 쓰이기에 이번 공천 결과는 미흡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경제민주화’라는 무기가 있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정을 심판하는 논거일 뿐만 아니라 대안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는 당 안팎 전통적 지지층의 우려를 일축하며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입했다. 정부 여당의 ‘안보몰이’도 기세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판단한다. 김 대표는 이미 “경제 정책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를 향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철희 전략홍보본부장은 “김 대표의 강점은 정치적 리더십이 아니라 ‘어젠다 리더십’이다. 당이 정치정당이 아닌 경제정당으로 바뀌었다”며 “그의 등장은 더민주당이 정치도덕적 이슈가 아닌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김종인, 그는 ‘진짜’가 될 수 있을까. 4·13총선 결과가 그 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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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총선#이한구#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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