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총선 복지공약 감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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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이제는 말할 수 있는데 말이야…. 사실 2012년 대선 당시 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기초연금 20만 원 준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지도 몰랐어.”

처음엔 술자리 농담이라 여겼다. 한데 곱씹을수록 농(弄)으로 치부할 말은 아니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캠프에 참여했던 A 씨. 이기는 데 집중하다 보니 공약에 세세히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모든 관계자가 그와 같진 않았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공약이 갖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전해져 헛헛했다.

4·13총선을 앞두고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선 옥석을 가리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공약의 꽃’이라는 복지 분야는 복잡한 정책 용어가 많아 더욱 그럴 게다. 게다가 공천과 선거 준비가 늦어져 남은 시간마저 촉박한 이번 총선에서 독자를 위해 ‘복지 공약 감별법’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먼저 ‘100%’, ‘전액’, ‘24시간’, ‘모든’ 등 확정적인 수식어가 붙은 공약은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복지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기에 이런 수사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큰 오산이다. 처음엔 다 지원할 것처럼 하다가 정작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례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셋째 아이 대학 등록금 ‘전액’ 지원,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등은 실행에 옮겨졌지만 당초 공약보다는 내용이 많이 축소됐다.

이번 총선 공약들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육아휴직급여 통상임금의 100%로 인상’,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100% 담당’ 등도 비슷한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특히 의료비를 100% 또는 전액 지원하겠다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국내 건강보험 시스템에서는 진료, 처방, 약값 등 의료 서비스가 제공됐을 때 환자가 부담하는 몫(자기부담률)이 반드시 있다. 엄청난 건강보험 지원(산정특례)을 받은 암 환자도 전체 의료비의 5%는 부담한다. 그런데 ‘100%’ 보장을 약속했다면 국내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런 팁만으로는 나쁜 공약들을 모두 솎아내기 어려운 법. 그래서 복지 담당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나쁜 공약을 몇 개만 소개한다.

새누리당의 ‘청년 두루누리 사회보험 연금보험료 지원 확대, 경력 단절 여성 국민연금 보험료 추후 납부 허용’은 다소 몰염치한 공약이다. 지난해 국회에 설치된 ‘연금특위’, ‘사회적기구’ 등에서 6개월 넘게 논의했지만 여당의 소극적 태도로 처리가 무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다시 공약으로 내건 자체가 실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더민주당의 ‘기초연금 30만 원까지 인상’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불과 한 달 전 ‘소득 하위 70%에 20만 원 전액 지급’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재원과 복잡한 구조 설계가 필요한 연금 공약이 한 달 만에 바뀌었는데 과연 정교한 분석을 거치기나 했을까. 유권자가 눈을 번쩍 뜨고 공약을 주시하지 않으면 정치권의 속이기는 계속된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총선#공약#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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