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이산가족 해결” 北 “금강산관광 재개”… 한밤까지 기싸움

  • 동아일보

[8년여 만에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

11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1차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에 앞서 남측 수석대표인 황부기 통일부 차관(오른쪽)이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11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1차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에 앞서 남측 수석대표인 황부기 통일부 차관(오른쪽)이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개성=사진공동취재단
8년 7개월 만에 이뤄진 오랜만의 만남에 ‘탐색전’은 길었다. 남북은 11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산적했던 현안들을 회담 테이블에 올리고 서로의 생각을 하나씩 확인했다. 오전 10시 40분에 시작된 회담은 30분 만에 전체회의를 마무리한 데 이어 이날 밤 두 차례의 수석대표 접촉을 마친 뒤 12일 오전 10시 반 회담을 다시 재개하기로 했다. 우리 대표단과 취재진은 개성 송악프라자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최우선 의제로 삼은 우리 정부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하는 북한의 줄다리기가 계속됐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쉽게 합의할 의제가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의견 차가 크다 보니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박근혜 정부의 첫 남북 당국 간 정례회담은 이처럼 시작부터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날 수석대표 접촉은 오후 6시 3분에서 7시 15분, 오후 9시 40분에서 오후 9시 55분까지 두 차례 진행됐다.

○ 반갑게 인사 건넸지만 팽팽한 신경전 지속

전날 개성에 미리 도착했던 북측 대표단은 이날 회담장인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1층 로비에 나와 남측 대표단을 맞이했다. 북측 대표 중 한 명인 황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은 북측 남북출입사무소(CIQ)로 직접 마중을 나왔다.

오전 10시 40분 전체회의는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며 시작했지만 팽팽한 신경전이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황부기 통일부 차관은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한 한시 ‘야설(野雪)’의 한 구절을 언급했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황 차관은 “들판에 눈이 내리면 길을 걸을 때 갈지자로 걷지 말고 서로 잘 걸어가라는 의미를 담은 시”라면서 “처음 길을 걸어갈 때 온전하게 잘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원칙’을 강조했다. 이에 전종수 북측 수석대표는 “본격적인 남북관계를 푸는 회담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우리가 장벽을 허물고 길을 열고 대통로를 열어 나가자”고 ‘성과’에 무게를 뒀다.

정부는 회담 의제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장 먼저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6만여 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 측에 일괄 전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회담의 성과에 따라 생사 확인→서신 교환→정례화→상봉자 수 확대→고향 방문 등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갈 계획이다.

○ 남측 이산가족 대 북측 금강산 관광의 간극

북한은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열린 사전 실무접촉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주요 의제로 꺼낸 뒤 이산가족 문제와 연계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의 필요성을 갖고 있지만 명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2011년 공표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문제, 신변 안전 보장 및 재발 방지 약속이 우선돼야 한다”며 “속도를 내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는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남북 차관급 회담 대응 전략을 막판까지 점검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선 2차 차관급 회담 날짜를 확정하고 각각 의제를 다룰 실무 분과(운영)위원회 개최 합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면 금강산 면회소를 활용하는 방식을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단계별로 풀어가는 해법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8·25 고위급 합의에 따른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살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측 대표단은 독일 차량인 폴크스바겐 ‘제타’와 벤츠 ‘E230’, 북한제 ‘휘파람’을 타고 개성공단에 등장했다. 회담장에는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생산한 ‘봉학샘물’(500mL)이 제공됐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정성택 기자 /개성=공동취재단
#이산가족#금강산관광#남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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