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유령과의 전쟁, 시즌2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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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령이다. 이번에는 성완종의 원혼(원魂)이다. 이미 국정 2인자 이완구 국무총리를 집어삼
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켰고,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가 포함된 리스트 7인방에게도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정치적 내상(內傷)을 입혔다. 성완종이 남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날이면 이 나라에서 ‘정치 좀 한다’ 하는 사람 중 자유로울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여야 불문이다.

왜 시즌2냐? 지난해 말 청와대를 강타했던 ‘정윤회 비선 실세’ 문건 파문 당시 국정 운영의 중심이었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논란에 대해 가슴을 치며 “유령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체 없는 의혹이 박근혜 정부를 흔들고 있다는 푸념이자 무력감의 표현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박 대통령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사실 박 대통령의 정치역정 자체가 유령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일 수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過)를 과장하는 사람들이 불러내는 ‘다카기 마사오’(박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의 유령, 폐쇄적 인간관계를 흠집 내려는 사람들이 표적으로 삼는 최태민 목사의 유령….

박 대통령 측근 그룹은 2012년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 ‘이로써 지긋지긋했던 유령과의 전쟁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최태민의 유령이 정윤회로 빙의(憑依)돼 박 대통령을 다시 괴롭힐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

집권 3년 차 국정동력 회복을 위한 박 대통령의 ‘부패와의 전쟁’이 현 정부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성완종 유령을 불러낸 것은 아이러니다. 충청지역 대부(代父) 격인 김종필 전 총리가 “이게 다 이완구 장난”이라고 했다니 성 회장이 화가 났을 법도 하다. 부패와의 전쟁 진두 지휘자였던 이완구가 성완종 복수극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것도 어쩌면 운명 같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윤회 문건 때처럼 성완종 리스트도 실체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경우 친박(親朴)들이 결국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친박들 인식 속에 이완구야 어차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견제할 ‘청부업자’였고,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자타 공인 ‘독불장군’일 뿐이다. 그렇게 성완종의 유령도 차츰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박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외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당장 가을경 찬바람이 불면 내각의 부총리나 장관급들이 앞다퉈 여의도행을 선언할 것이니 “내가 ‘순장조’요”라며 나설 만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지난해 7월 당 대표가 되면서 “대통령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쳐야 할 역사적 소명이 주어졌다”고 했던 김무성도 결국 박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늘이 알고 땅도 아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유령의 복수가 시작되기 전에 박 대통령 스스로 마음을 열고 보듬어 나갔으면 한다. 1주년 때 제대로 하지 못한 세월호의 아픔 어루만지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차디찬 바닷속에서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한 영혼들의 간절한 절규에 엄마의 마음으로, 누나의 심정으로 다가가야 한다.

6·25전쟁 중남미 유일 참전국인 콜롬비아 사람들의 입에서 연신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란 말이 나오게 했던, 식칼 공격을 당했던 마크 리퍼트를 감동시켰던 진정성이라면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져 갔던 우리 아이들의 영혼 앞에 무릎 꿇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천신만고 끝에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도 유령과의 전쟁 시즌3를 맞아서는 안 되기에 하는 말이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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