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방공구역’ 치고 빠지기… 美는 日과 연대 고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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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日 ADIZ 신경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뒤 강공으로 일관하던 중국이 선포 닷새째인 27일부터 갑자기 로키(low key·저강도 대응)로 선회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한국 미국 일본 3국 공조를 외치며 중국이 선포한 ADIZ에 폭격기와 자위대 항공기를 들여보내는 등 강력한 역공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ADIZ 조정을 요구하는 한국의 요청을 거부하면서도 유독 한국만 비난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한미일 안보동맹에서 한국을 떼려는 모습을 보였다.

○ 중국 구두탄(口頭彈) 속 행동은 로키로 급선회

중국 국방부와 외교부는 28일 “일본과 미국은 이러쿵저러쿵할 자격이 없다”며 입으로는 여전히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국방부 양위쥔(楊宇軍) 대변인이 ADIZ 철회 가능성에 대해 “44년 이후에나 고려하겠다”고 밝혀 이미 선포한 ADIZ를 조정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중국 국방부와 외교부는 미국이 중국 측 ADIZ에 B-52를 보낸 데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B-52가 중국 ADIZ에 들어간 것은 비무장 상태라고는 하나 중대한 도발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ADIZ가 영공도 아니며 민항기 운항에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미국보다는 일본 비판에 화력을 집중하는 등 중-미 간 직접 대결을 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초계기와 일본 자위대 항공기가 사전 통보 없이 중국 ADIZ를 비행했어도 중국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장거리 훈련에 나선 항공모함 랴오닝(遼寧)이 민감 지역인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주변 해역을 우회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편 중국은 23일 ADIZ 선포 이후 줄곧 한국에는 공격적 대응을 삼가며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8일 국방부와 외교부의 브리핑에서도 미일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한국의 반발은 거론하지 않았다.

○ 강도 높이는 한미일의 삼각공세

반면 미국은 27일 일본 한국 등 주변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과시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 국방부는 척 헤이글 장관이 이날 오전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과의 통화에서 미일 방위조약 대상에 센카쿠가 포함된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국무부도 존 케리 장관이 전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전화 회담을 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공개했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미 행정부가 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6일 현안 질의 보고서를 내고 “미국은 아시아 지역 동맹국 및 관련국들과의 조율된 대응을 통해 일방적인 긴장 상승이 중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사실을 베이징(北京)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군과 자위대는 이날 오키나와(沖繩) 남측 해상에서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 미 해군의 핵추진 항모인 조지워싱턴(9만7000t급)과 자위대 호위함 등 약 15척이 참가했다. 교도통신은 미국이 26일 B-52를 중국의 ADIZ에 출격시키기 전 일본에 비행 계획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9일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 개회식에 참석해 중국 ADIZ에 대해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의 오판인가, 전략적 선택인가

중국의 ADIZ 선포 이후 동아시아 정세는 미국 동맹그룹 대 중국 간 대립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28일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형국을 감안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자에서 “ADIZ 설정은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대신 미국과 동맹국들을 결집시켰다”며 “특히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안정 유지에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아 동맹국들에 확인시켜 줄 ‘완벽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은 이번 조치로 오히려 주변국에 안보 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필리핀도 이날 “중국이 ADIZ 선포로 관련 국가들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반중(反中) 대열에 가세했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ADIZ를 선포한 것 자체가 동아시아 제공권 확보에서 중요한 성과를 거둔 셈이며 이제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칫 미국과 정면 대치 상황이 벌어지면 중국이 강력히 추진해온 신형대국관계가 파탄 나는 것은 물론이고 동북아 안보상황이 급속히 악화돼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따라서 실리를 취한 중국이 상대방에게는 체면을 세울 기회를 주면서 적절히 긴장 수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외교가에서는 다음 달 1일부터 8일까지 예정된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일중한 3국 순방이 이번 사태의 1차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도 바이든 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이번 사태의 전개 방향을 군사전에서 외교전으로 바꾸면서 장기화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고기정 koh@donga.com / 워싱턴=신석호

도쿄=박형준 특파원
#중국#방공식별구역#미군#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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