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쥔 대기업 상대 소송? 中企간 분쟁만 늘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 중소 - 중견기업 ‘설익은 경제민주화’에 속앓이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도 “경제민주화 법안은 ‘3불’(불공정한 거래, 불균형 시장, 불합리한 제도) 해소가 아닌 기업 옥죄기 법안”이라며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의원들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는 불만도 나온다.

○ 수직계열화 가로막는 내부거래 규제

대표적인 것이 일감 몰아주기(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현행법은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 일감을 몰아준 회사에 관련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그러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감을 받은 회사도 최대 5%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의 판단 근거를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있어 제재를 받는 기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견기업계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견기업은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조달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수직계열화가 필요한데 정상적인 계열사 간 거래마저 부당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이런 구조에서는 중견기업이 유망한 중소기업을 인수해 성장하고, 회사를 판 중소기업인은 다시 창업하는 선순환도 이뤄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에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매출 중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는 기업의 지배주주와 그의 가족에 증여세를 과세하는 현 제도와 중복돼 이중규제라는 주장도 있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 중소·중견끼리 싸울 것”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법안은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에 더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4월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을 기술 탈취에서 부당 단가 인하, 반품 등으로 확대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배상액을 손해의 최대 3배에서 최대 10배로 강화하는 법안도 발의돼 있다.

대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이 법안의 취지와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은 중소기업계 내부에서 주로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조성환 신성컨트롤 대표는 “납품을 포기하지 않고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원청업체의 75%는 중소기업이고,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가 처리한 사건의 80%가 중소기업 간 분쟁이다.

중소·중견기업은 소송업무를 맡는 인력도 태부족이다. 연 매출 2000억 원대인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법대를 나온 사원 한 명이 법무를 도맡고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인 단가 인하의 ‘부당성’을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중견기업 대표는 “중소기업들로부터 소송을 당하지 않으려면 법무인력을 늘려야 하는데 인건비 부담이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계약관계를 법으로 지나치게 제한하면 기업들이 해외에서 거래처를 찾는 등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거나 관행을 바꾸는 등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대기업 직원만 좋은 근로기준법

현재 논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대기업 근로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중소·중견기업과 취업준비생에겐 오히려 ‘불이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쟁점이 되는 것은 고정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법안이다. 통상임금이 증가하면 이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연장·야간·휴일근무 수당이 늘어나고 퇴직금, 4대 사회보험 등 간접 노동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중견기업의 부담이 더 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들은 매년 3조4246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해 기업이 자산 매각, 근로시간 단축, 신규 채용 중단, 휴직 등의 노력을 먼저 해야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기업이 고사(枯死), 영업불가 상태에 이를 때까지 인력 조정도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 근로자에겐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근로자와 구직자에겐 경제 비(非)민주화인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들은 통상임금을 조정하는 대신 임금을 동결하고 신규 고용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려고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거나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 대리점과 협상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에는 본사가 거래 변경사항을 가맹점 및 대리점 단체와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특히 남양유업 사태를 겪으면서 대리점법에는 본사와 대리점 단체가 협의한 내용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정부가 기업의 계약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가맹점 600여 개를 두고 있는 중견 외식기업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식자재 납품 가격을 조정하거나 영업시간을 정하는 등 사소한 협의도 애를 먹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민주화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이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국민 정서와 여론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각종 부작용이 나오는 것”이라며 “충분한 조사와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기업들이 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현·박창규·김호경 기자 yhkang@donga.com
#중견기업#경제민주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