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6> 국세청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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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확대로 돈 쓸곳 늘어… 세원 발굴 힘써야”


2004년 후반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PC방을 들락거렸다.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 전자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납세자가 세금신고 서류를 제출하면 이를 모아뒀다가 PC방에서 입력했다. 사무실에서 입력하면 전자신고로 분류되지 않지만 PC방에서 입력하면 납세자가 직접 전자신고를 한 것처럼 된다. 이용섭 당시 국세청장이 정보기술(IT) 세정을 모토로 내세우자 직원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무늬만 전자신고’를 한 셈이다.

2008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간부 수백 명을 모아놓고 대대적인 사회봉사단 발족식을 치렀다. 이어 지방국세청들은 경쟁적으로 농촌 봉사, 집 고치기 등에 나섰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이런 분위기에서 세무행정 서비스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다는 말들이 오갔다. 당시 국세청 간부였던 A 씨는 “한마디로 쇼였다”며 “리더가 이벤트나 이미지에 신경 쓰는 것은 개인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전 청장은 그림 로비 의혹에 휘말렸다.

새 정부의 국세청장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서민 복지를 위해 돈 쓸 곳은 많지만 세수(稅收)는 이미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본업보다 가욋일에 신경 쓰다 낙마한 과거 청장들의 그늘을 벗겨내면서도 조세저항을 최소화하고 세금은 더 거둬야 한다. 세원(稅源) 확대를 위한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이용 등 정부 안팎의 협조를 받아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① 세정(稅政)에 해박한 전문가

박근혜 정부의 국세청장은 ‘안정적 세입(稅入) 기반 확충’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어느 때보다 충실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과거와는 세정 여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세수 차질은 이미 현실화됐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올해 예산안을 편성할 때는 총 205조8000억 원의 국세(國稅)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올해 1조 원 남짓 세수 결손이 생길 것 같다”고 밝혔다. 내년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정부는 27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9월 예산안 편성 당시 내놨던 전망치(4%)보다 1%포인트 낮췄다. 이에 따라 세입은 2조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는 벌써 쥐어짜기를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 관행적으로 넘어가던 것들을 갑자기 해석을 달리해 탈세라고 판단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세무사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작용을 줄이면서 세금을 더 거두려면 세정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 청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② 특정 지역·세력에서 자유로워야

역대 정권들은 세무조사라는 칼을 쥐려고 정권에 충성심이 높은 인사를 국세청장으로 임명해왔다. 김대중 정부 때는 안정남 청장을 비롯해 요직을 광주고 출신이 차지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광주 출신이 아니면 청장 후보에 낄 수도 없었다”고 떠올렸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세청장, 조사국장, 서울청장 등 핵심요직은 TK(대구 경북) 출신이 맡고 있다.

정권 덕분에 청장 직에 오르면 자신을 밀어준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안 청장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움직인 셈이다. 그 공로로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했지만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포탈이 드러나 물러났다.

③ 현직에 충실해야 바람직

노태우 정부의 서영택 청장부터 노무현 정부의 이용섭 청장까지 국세청장 7명 가운데 5명이 퇴임 후 장관으로 입각했다. 청장 때 정권에 충성하면 이후 장관 자리가 보장받는 셈이다.

이런 관행은 후임 청장들의 연이은 낙마에 영향을 미쳤다. 국세청 전 간부인 B 씨는 “이주성 청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뒤에도 후임 청장들은 다음 자리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싼 사건들을 보면 ‘자리를 위한 줄 대기’ 문화의 단면을 알 수 있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자리를 유지하려고 정권 실세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결국 사퇴했다. 수사 과정에서 한 전 청장은 그림을 상납하고 TK 출신들과 부적절한 골프 회동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④ 조직 안팎 소통도 절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39년 만에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청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곳이 농협중앙회장과 국세청장”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간부들은 이 한마디에 국세청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떠올렸다. 한 현직 간부는 “공평하고 열린 인사로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극복하고 내부 소통을 활발히 해야 한다”며 “직원들이 리더를 따를 때 세수 확보라는 본연의 업무가 굴러간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최근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 FIU 자료 이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국세청은 조세범칙 혐의 확인을 위한 세무조사 때만 FIU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등은 국세청의 이런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세청이 그런 정보를 가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국세청장이 앞장서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신뢰를 얻어야만 해결될 사안이다.

이은우·문병기 기자 libra@donga.com  
▼ 국세청장 후보군 누가 거론되나 ▼

내부 박윤준 조현관 김덕중 김은호… 외부 윤영선 주영섭 안종범 등 물망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조세정책은 단순히 세율을 높이기보다 세원을 넓히고 새나가는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이는 데 있다.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세금 부담이 낮은 자본이득, 소득 투명성이 낮은 사업소득, 각종 비과세 감면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과제들은 수행하려면 ‘힘 있는 실세’보다는 국세행정의 전문가가 국세청을 이끌어야 한다는 당위론이 나온다. 박 당선인이 강조한 전문성과 탕평 가운데 전문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뜻이다. 새 국세청장 인선은 2월 대통령 취임 직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현동 현 국세청장은 2010년 8월 취임해 2년 4개월째 장수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새 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장이 교체됐다.

전문성을 고려해 내부 승진이 이뤄진다면 국세청 1급 4명이 차기 청장 후보로 분류된다. 현재 국세청 1급은 박윤준 본청 차장(행시 27회·서울), 조현관 서울지방국세청장(25회·대구),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27회·대전), 김은호 부산지방국세청장(27회·부산) 등이다.

박 차장은 해외근무 경험이 풍부해 국제조세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조 서울청장은 추진력이 뛰어나고 김 중부청장은 덕장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 부산청장은 진솔하고 조직 장악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세청 외부 인사로는 윤영선 전 관세청장(서울)과 주영섭 현 관세청장(전북·이상 23회)이 새 국세청장 후보로 거론된다. 두 사람 모두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거쳐 세무정책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과 강석훈 의원을 주목하기도 한다. 안 의원은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부) 출신으로 조세와 재정전문가로 꼽힌다. 강 의원은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부)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채널A 영상]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에 주목 받는 3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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