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열릴 동안 세종시 사무실 문 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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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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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여의도 150km… 정부부처 본격이전 앞두고 가상 시뮬레이션 해보니

지난해 12월 31일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들은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 행사를 국회 복도에서 TV로 봤다. 12월 내내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국회에서 씨름하는 동안 예산실 직원 대부분은 끝도 없이 공전되는 회의를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예산실장이던 김동연 재정부 2차관은 “막판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우린 노숙인이나 다름없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갔다”며 “연말에는 국회에 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해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긴밀한 의사소통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둘 사이의 거리가 150.6km 떨어질 내년부터 지금과 같은 대면(對面) 위주 업무시스템으로는 행정부 기본업무의 처리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주요 6개 부처의 세종시 이사가 2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런 행정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全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13년 12월 28일, 가상의 하루

재정부 세제실 김모 과장은 벌써 2주째 세종시 자신의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지 못하고 있다. 2014년도 예산안 처리가 국회에서 지연되면서 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 처리도 공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기국회 개원 이후 김 과장이 사무실에서 제대로 일을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정감사 뒤인 10월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법안 논의가 시작되자 그는 세종시 사무실을 닫고 국회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2주 내내 조세소위가 열리는 동안 꼬박 회의장 구석에 앉아있느라 그는 여관방과 서울의 동료 집을 전전했다. 이후 1주간 세종시로 다시 내려갔지만 곧바로 재정위가 속개되면서 다시 기약 없는 국회 출근이 시작됐다. 11, 12월 세종시로 출근한 날은 다 합쳐도 3주가 채 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국회 기간에도 틈틈이 정부과천청사 사무실에 들러 업무가 가능했지만 세종시 이전 뒤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교통량이 아주 드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여의도에서 세종시까지 가려면 승용차로 최소한 3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김 과장의 사례는 가상(假想)이지만 실제로 벌어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올 9월에 국회에 총 8일간 출석하고 청와대 및 중앙청사를 오가느라 과천 집무실에는 4일밖에 들르지 못했다. 지난해의 경우 10월에는 6일, 11월에는 7일, 12월에는 4일간 ‘공식적’으로 국회에 출석했다. 국·과장급 직원들은 개별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필요할 때마다 부르기 때문에 더 자주 가야 한다. 재정부의 한 국장은 “예산이나 법안이 걸려 있는 간부의 출석 횟수는 장관의 1.5∼2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내년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면 국회 시즌에 주요 부처 국·과장급 공무원은 근무일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국회에서 ‘대기’하느라 보내야 한다. 월 10일가량 여의도∼세종시를 오갈 경우 왕복 KTX 요금(3만4400원)만 월 34만4000원 이상을 써야 하고, 숙박을 한다면 하루 6만 원짜리 여관에 머문다고 해도 월 60만 원 넘게 숙박비로 지출해야 한다. 내년에 총 4200명의 공무원이 세종시로 이전하기 때문에, 정기국회 시즌에 1000명이 넘는 공무원이 여의도를 오갈 경우 단순히 따져 봐도 월 3억 원 이상의 비용이 나간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런 업무 비효율은 1997년부터 정부대전청사에 입주한 주요 청(廳)에선 ‘당연한 일상’이 됐다. 통계청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대학가의 한 여관을 ‘지정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국회에서 전화나 e메일로 자료 요청을 받으면 뭘 요구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 비효율을 감수하고 서울에 온다”고 말했다.

○ 효율화 없이는 ‘행정 마비’ 불가피

정부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화상회의 시스템 도입 △스마트워크 센터 설치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대(對)국회 업무 간소화’는 꿈도 못 꾸고 있다. 김정민 국무총리실 세종시지원단장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서울, 과천, 세종시에 흩어진 행정부 간 협업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회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추진되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대선후보들도 무관심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국회 분원 설치를 공약했지만 이를 통해 어떻게 국회 업무를 분산할지에 대해서는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의견을 낸 적조차 없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자치행정학)는 “지금과 같은 국회와 정부의 업무관계로 보면 일부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에 따른 비효율은 국가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국회가 정부 공무원을 일일이 불러 복도에 대기시키는 식의 전근대적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국회#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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