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南 때리기’에 체제 생존 걸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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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군부대 구호 빌미로 15만명 동원… “최고존엄 모독”

대남 비난전 빌미 된 南 군부대 구호 북한의 반발을 부른 인천 한 군부대의 대북 비난구호. 김정일 김정은 부자 사진 위 아래로 군의 ‘전투구호’가 적혀 있다. 헤럴드경제 제공
대남 비난전 빌미 된 南 군부대 구호 북한의 반발을 부른 인천 한 군부대의 대북 비난구호. 김정일 김정은 부자 사진 위 아래로 군의 ‘전투구호’가 적혀 있다. 헤럴드경제 제공
북한이 이른바 ‘최고 존엄(수뇌)’을 모독했다며 연일 격렬하게 남측을 비난하고 있다. 4일에는 대규모 집회까지 열어 “무차별적인 성전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한 군부대에서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비난한 것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북한의 여러 가지 ‘노림수’가 숨어있다.

북한 조선중앙TV 등은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평양시 군·민 대회‘를 생중계했다. 방송은 15만여 명의 군중과 군인들이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회에는 이영호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최영림 내각 총리, 김기남 최태복 당 비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당·정·군 고위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다.

연설자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깡패집단의 특대형 도발행위’ ‘미친 개’ ‘짐승보다 못한 역사의 쓰레기’ ‘찢어죽이자’ ‘죽탕쳐 버리자(볼품없이 만들자)’ ‘청와대 불바다’ 등 다양한 욕설과 위협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 이름 앞에 ‘개’자를 붙여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 조선중앙TV는 이날 북한 군인들이 ‘정신병자 이명박 역도와 군부 호전광들을 때려잡자’는 구호가 적힌 표적에 사격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북한 외무성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이날 각각 대변인 담화를 내고 “우리 식대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은 2일부터 사흘간 ‘최고 존엄 모독’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대남 비난 보도를 100건 이상 내놓았다.

이번 사건은 최근 인천의 한 군부대에서 생활관 문에 김정일 김정은 부자의 사진을 나란히 붙이고 위아래에 ‘때려잡자! 김정일’ ‘쳐!! 죽이자! 김정은’이라는 구호를 적어놓은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해 이른바 ‘김씨 일가 사격 표적지 사건’과 ‘김정일 부자 비난 구호 사건’이 보도됐을 때에도 북한은 강경 비난을 쏟아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이 같은 북한의 행태는 무엇보다 권력교체기에 내부 단속을 위해 이 사건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 北 “우리식대로 무자비한 성전” 위협… 국방부 “억지 주장 대응할 가치 없어” ▼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다음 달 중순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공식 완료될 예정인데 북한 당국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대남 비난 수위를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2·29 북-미 합의’ 이후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당국 간 불신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과는 대화하고, 남한은 압박하겠다’는 이중전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남 관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외무성까지 대남 비난에 나선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2일 군 전략로켓사령부(옛 미사일지도국으로 추정)를 시찰하고, 4일에는 판문점을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시찰에서 “적들이 움쩍하기만 하면 무자비한 화력 타격으로 원수들의 아성을 불바다로 만들라” “언제나 최대의 격동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 싸움이 일어나면 정전협정 조인이 아니라 항복서에 도장을 찍게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선군(先軍)을 앞세워 대남 긴장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미국에도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 북-미 합의를 철회하겠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중국 내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를 놓고 북한과 중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도 북한을 자극하는 요소다. 아울러 불편한 남북관계를 집중 부각함으로써 4·11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불리하도록 영향을 미치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이런 식의 대남공세에 더 골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억지주장에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인천 부대의 게시물은 지휘관이 장병들의 대적관 확립을 위해 부착한 것일 뿐”이라며 “그간 북한은 우리 정부와 최고위층에 대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방 중상 행위를 계속해왔다”고 반박했다. 육군 관계자는 ‘북한의 반발 이후 군의 조치는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 뭐라 반발하든 현재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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