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2007년엔 착한 FTA-2010년엔 나쁜 FTA”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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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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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독소” 주장 ISD 5년전 열린우리땐 “대외투자 보호 위해 ISD 필요”② 10개 항목 재협상 요구? 9개 항목은 盧정권 작품③ 車 세이프가드 달라졌지만… 관련업계서도 큰 불만 없어④ 180도 바뀐 野 지도부… 5년전엔 “새 성장 모멘텀”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대대표는 14일 고위정책회의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07년 자유무역협정(FTA)과 2010년 FTA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여권 대권주자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무지의 소치이고 몰역사적인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지금의 한미 FTA 협정 내용 대부분이 노무현 정부 시절 완성된 것이고, 민주당이 제시한 국내 보완대책 요구(통상절차법 제정, 무역조정지원제도 강화)가 수용된 만큼 ‘지나친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현 정부 들어 한미 FTA가 변질됐다는 주장인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 검증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재협상을 요구한 10개 항목 중 9개는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것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공식 평가서를 통해 ‘이익 균형을 맞춘 협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는 현 민주통합당 지도부 인사 대부분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에 대해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 5년 전에는 “잘된 협상”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한미 FTA 타결 직후인 2007년 4월 정부와 공동으로 ‘한미 FTA 평가위원회’를 꾸려 3개월의 논의 끝에 협상 결과 평가보고서를 내놨다. 365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현 민주통합당이 재협상을 주장하는 10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적시됐다. 민주당은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자동차 돼지고기 의약품 3개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는 2007년 협정문 그대로다.

우선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와 관련해 이 보고서는 “우리가 체결한 대부분의 경제협정에 ISD가 포함돼 있어 새로운 중대도전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향후 중국 등과의 협정에 정당한 ISD 규정 삽입을 통해 대외투자를 보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추진할 한중 FTA에서 우리 기업들의 대(對)중국 투자 보장을 위해 ISD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중 수교 이후 20년간 우리나라의 대중 투자액은 479억 달러(약 53조6480억 원)에 이른다.

민주통합당은 서비스 시장 개방 방식을 네거티브(미개방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포지티브(개방 분야만을 나열) 방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했지만, 2007년 열린우리당은 “한-칠레 FTA 이후 대부분의 FTA 협상에서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 세이프가드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외환위기 이후 추진해 온 금융시장 선진화 조치에 따라 이미 미국 금융시장 구조에 적응했다”고 했으며, 학교급식에 대해선 “한미 FTA의 예외로 인정받을 근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민주당은 현재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한미 FTA 체결 당시 열린우리당은 “역외가공 분야에 대해 향후 논의 약속을 받아낸 만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이 항목과 관련해 그때와 지금 협정문은 달라진 게 없지만 민주당의 평가는 칭찬에서 비난으로 5년 만에 180도 바뀐 것이다.

10개 재협상 주장 항목 중 이명박 정부 때 재협상으로 고쳐진 것은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치가 유일하다. 2010년 추가협상 때문인데, 이것이 민주당이 말하는 ‘노무현 FTA와 이명박 FTA 차이’의 근거다. 추가협상에 따르면 당초 즉시 철폐되기로 한 미국 승용차 수입관세는 발효와 동시에 8%→4%로 낮아지고 5년째부터 철폐된다. 그 대신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수입관세(25%) 철폐 시기를 2년 늦추고, 복제 의약품의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시판을 막는 규제도 3년 유예했다. 정부는 추가협상에 따른 자동차 무역수지 감소 규모를 5300만 달러(약 593억 원)로 추정했지만, 정작 이익이 줄어드는 자동차업계는 “추가협상에 따른 손실보다 FTA 체결에 따른 미국 시장 진출 이익이 더 크다”며 FTA 체결을 반겼다. 민주통합당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폐지’를 주장하지만 이 분야만큼은 노무현 정부 협상 결과보다 이명박 정부 재협상 결과가 유리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민주당 지도부 입장 180도 선회


스스로의 평가보고서를 부정하는 민주당은 지도부의 발언조차 당시와 180도 바뀌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발효 이전에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수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시킬 것”이라고 말했지만 5년 전 국무총리 시절에는 “한미 FTA는 장기적으로 중국, 일본 등이 한국을 매개로 연계되는 효과와 안보 리스크 완화로 인한 대외신인도 제고가 기대된다”고 극찬했다.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2007년에는 “한미 FTA는 다소 진통이 있더라도 가야 할 길이다. 과도하게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실용론’을 주창했다.

현재 대표적인 한미 FTA 반대론자인 정동영 민주당 의원도 2007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시절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만큼 이제는 국론통합이 중요하다. 다가오는 개방의 파고를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FTA와 2010년 FTA가 다르다’고 주장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007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으로 있으면서 ‘협상 결과 평가보고서’를 발간한 평가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당시 김 대표는 “수출 비중이 60%가 넘는 우리나라가 샌드위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한미 FTA는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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