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風 타고 당권 잡았다가 쇄신風에 밀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 洪, 5개월만에 불명예 퇴진“쇄신대상 지목 가슴 아파… 더 이상 계파투쟁은 없어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영원한 비주류’였다. 7·4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뒤 취임 일성이 “변방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것일 정도였다. 당내에 뚜렷한 지지 세력이 없음에도 ‘쇄신 바람’을 등에 업고 당권을 거머쥔 홍 대표는 9일 취임 5개월 만에 역설적으로 ‘쇄신 바람’에 밀려나는 비운의 당사자가 됐다.

당내에선 홍 대표 체제를 두고 “주민투표로 시작해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로 끝났다”고 평가한다. 그만큼 지난 5개월 동안 홍 대표나 당 지도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휘둘렸다는 얘기다. 홍 대표는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고 수평적 당청관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나름대로 당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중요한 국면에서 보여준 특유의 ‘독불장군’ 행보가 오히려 화를 불렀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25.7%)이 개표 조건(투표율 33.3%)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사실상 승리했다”고 말해 한나라당에 등진 민심을 자극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에는 “이대 계집애들” “꼴같잖은 게 대들고” 등 연이은 말실수로 리더십의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파문에서 특별검사 도입이나 국정조사 실시를 먼저 치고 나가자는 최고위원들의 뜻을 거스르면서 결정적 위기를 맞았다. 두 차례나 ‘재신임 승부수’로 기사회생한 그는 8일 자신의 쇄신안을 강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홍 대표는 9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온 나를 일부에서 쇄신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권력투쟁의 희생양임을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당내에선 홍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권에 너무 집착하면서 오히려 권력투쟁을 촉발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홍 대표의 퇴진으로 측근그룹인 김정권 사무총장과 김기현 대변인, 이범래 대표비서실장도 이날 당직에서 물러났다. 사무총장 직무는 친박(친박근혜)계인 이혜훈 제1사무부총장이 대행하고 대변인은 이두아 원내대변인이 병행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