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정치부 기자도 반성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0일 03시 00분


김기현 정치부
김기현 정치부
“정치권 전체에 선전포고 하자는 것이냐.”

동아일보가 25일부터 ‘정치가 한국병(病)이다’ 시리즈를 시작하자 한 의원은 이렇게 물었다. 그동안 정치권을 비판하는 기사가 많았지만 국회 폭력부터 정치권의 ‘밥그릇 챙기기’, 계파와 공천 문제, 지역주의의 굴레, 독설과 ‘네이밍(낙인찍기)의 정치’ 등 정치인들이 불편해할 만한 주제를 모아 다룬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정치권에 들어와 한계를 느낀 초선 의원들에게 본보 지면은 평소의 답답함과 부끄러움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을 공간이었다. 실명으로 언급된 의원 중 일부는 자신과 관련된 내용에 항의하기도 했다.

독자들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기사를 읽고 속이 시원했다’는 e메일과 “정치는 한국병이 아니라 독(毒)”이라는 누리꾼의 신랄한 비판 등에서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얼마나 따가운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정계 원로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취재진에 전화를 걸어 “이래야 의원들이 정신을 차린다”며 “정치가 갈수록 후퇴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전 의장은 “소신발언, 소신투표를 하려 해도 당 지도부가 눈치 한 번 주면 ‘찍소리’도 못하는 게 현실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무슨 민주정치가 가능하겠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본보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독자인 유권자의 문제점까지 지적한 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의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 특히 현장에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지켜보며 정치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고백하건대 치열한 취재 경쟁 속에서 경마(競馬)중계를 하듯 기사를 쓴 것은 아니었는지, 더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 ‘제목 장사’의 유혹에 빠진 적은 없었는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숱한 정책보다는 몸싸움과 정파 간의 갈등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번 기획에서 다루지 못한 수많은 정치권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예로 동남권 신공항 사업을 둘러싼 지역 갈등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이번 기획이 일과성 비판에 그치지 않도록 앞으로도 국민과 함께 정치권의 변화 여부를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려 한다. 그것이 정치부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성의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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