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아리 텍사스 ‘性戰’ 10년 그 이후…

동아일보 입력 2010-09-07 03:00수정 2010-09-0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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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엔 재개발 아파트… 10년 눈치 영업
지난달 31일 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미아리 텍사스’ 입구 주변. 오른쪽으로는 고층 아파트 건설현장이 있고, 그 뒤로는 불을 밝힌 아파트 단지가 눈에 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는 외딴 ‘섬’ 하나가 있다. 5∼6년 전 급격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 한가운데에 1, 2층짜리 단층건물 10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은 단순한 쪽방촌이 아니다.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집창촌이다. 2000년 1월 김강자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이 대대적 ‘성전(性戰)’을 펼치면서 미아리 텍사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기자가 찾아가 본 미아리 텍사스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지역 주민들과의 불편한 동거(同居)를 하고 있었다.

○ 검은 커튼으로 가려진 홍등가


토요일인 지난달 28일 밤 12시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를 나서자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입구에는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던 것. 미로처럼 복잡한 청소년 출입금지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이모’들이 대뜸 물었다. “연애하고 가시게?”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100여 m를 걷는 동안 귀에 이어폰을 낀 호객꾼들이 열 번도 넘게 기자의 손목을 잡았다.

‘피크 시간’대라는 오전 1시가 되자 ‘볼일’을 보고 나오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500여 곳)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90여 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다.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김경아(가명·30·여) 씨는 “철거된 줄 알았다가 옛 생각에 다시 한 번 와보는 손님도 있고, 그렇게 한 번 왔다가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도 아가씨 한 명에 하루 평균 5, 6명의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만 16년째 이모 일을 하고 있다는 이모 씨(42·여)는 “예전에는 경찰 단속이 제일 두려웠다면 요즘은 동네 사람들 눈치가 제일 보인다”며 “업주들이 신참 이모를 쓰지 않는 것도 동네 주민과 손님들을 구별하는 ‘눈썰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빨간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검은 커튼을 치는 것은 기본이다.

○ 불편한 동거는 언제까지…


재개발만 되면 집창촌이 사라질 거라 믿었던 주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달 30일 다시 찾은 이곳에서 만난 이모 씨(72)는 “재개발 초기에는 집창촌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며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집창촌 때문에 더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이사를 결심한 주민도 있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의 신고도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다. 서울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요즘에는 성매매 지역을 단속해달라는 민원성 신고도 거의 없다”며 “매일 단속에 나가다시피 하지만 성매매 현장을 매번 적발하기는 어렵다. 재개발이 되면 자연 소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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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일대가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2, 3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미아리 텍사스는 지난해 1월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월곡 1구역으로 지정됐다”며 “2012년 상반기나 돼야 이주 및 철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의 다른 집창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산역 일대의 집창촌은 현재 재개발 보상을 놓고 협의 중인데 연말쯤에나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도 미아리 텍사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 성매매특별법 후 6년…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성매매단속 현황에 따르면 성매매 관련 검거 인원은 2000년 7783명에서 지난해 7만3008명으로 증가했지만 구속 인원은 895명에서 633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검거 인원은 늘었는데 구속인원이 줄어든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강요된 성매매’가 줄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2000년에는 미성년자를 고용한다든지 채무를 빙자한 감금 및 강요 등 반인권적 행위가 많아 구속 건수가 많았던 반면 성매매특별법이 마련된 2004년 이후 강요된 성매매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소나 방식만 바뀌었을 뿐 성매매는 줄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성매매 여성들이 오피스텔이나 주택가로 근거지를 옮기고,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늘어나는 등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흩어지면서 성병 등 보건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성매매특별법이 완벽하진 않지만 성매매를 범죄 행위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라며 “초범의 성매수 남성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존스쿨(성범죄 재발방지 교육기관)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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